배우 안성기 [자료사진=연합뉴스]

국민 배우 안성기가 5일 7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안성기 배우 장례위원회는 이날 오전 9시께 안성기가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던 중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음식물이 목에 걸린 채 쓰러진 후 중환자실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입원한 지 6일 만이다.

안성기는 2019년부터 혈액암 투병을 해왔다. 2020년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재검진 과정에서 암 재발이 확인됐다.

2020년 10월 입원 사실이 알려지며 건강 이상설이 제기됐고, 2022년 언론 인터뷰를 통해 혈액암 투병 사실을 공개했다. 최근에는 회복에 전념하며 작품 복귀를 준비해왔다.

2023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안성기는 건강이 아주 좋아졌다며 새 영화로 찾아오겠다고 다짐했다. 같은 해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식에서는 박중훈, 최민식과 함께 참석해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안성기는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배우로서 뛰어난 연기력과 바른 품행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영화 제작자였던 부친 안화영 씨와 친구 사이였던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1957)에 아역배우로 출연하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1959년 김기영 감독의 10대의 반항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영화제에서 특별상을 받으며 일찍이 재능을 인정받았다. 동성고에 진학하며 학업에 전념하기까지 10년간 7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고교 졸업 후 한국외국어대 베트남어과에 진학한 안성기는 ROTC로 군 복무를 마치고 전공을 살려 해외 취업을 계획했으나 베트남 전쟁 여파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를 계기로 영화계로 다시 관심을 돌렸고, 10년 만에 성인 배우로 카메라 앞에 섰다.

영화계 복귀 첫 작품은 김기 감독의 병사와 아가씨들(1977)이었다.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재도약한 안성기는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1980)로 배우로서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만다라(1981, 임권택 감독), 꼬방동네 사람들(1982, 배창호), 고래사냥(1984, 배창호), 칠수와 만수(1988, 박광수) 등이 1980년대 안성기를 주목하게 한 작품들이다.

1990년대 들어 한국 영화가 산업자본을 만나며 큰 변화를 겪는 가운데 안성기는 다채로운 캐릭터를 맡으며 최고 전성기를 맞았다. 남부군(1990, 정지영), 하얀전쟁(1992, 정지영), 투캅스(1993, 강우석), 그대 안의 블루(1992, 이현승), 태백산맥(1994, 임권택), 퇴마록(1998, 박광춘),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이명세) 등 출연 작품마다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2000년대에도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며 영화계 맏형 역할을 했다. 무사(2001, 김성수)로 첫 남우조연상을 받았고, 한국 최초의 천만 영화 실미도(2003, 강우석), 라디오스타(2006, 이준익) 등 호평받은 작품들이 많다.

2010년대와 2020년대에는 과거보다 배역 비중이 줄었지만 여전히 촬영 현장을 지키며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다. 부러진 화살(2012, 정지영), 화장(2015, 임권택)은 베테랑 배우로서 연기가 돋보인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가 마지막으로 선보인 작품은 김한민 감독의 노량: 죽음의 바다(2023)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을 보좌한 어영담 역을 맡았다.

안성기는 아역 시절부터 현재까지 69년간 17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며 영화계를 이끌었다. 2017년 데뷔 60주년을 맞아 영화계가 특별전을 여는 등 각별하게 예우받았다. 1980년 바람불어 좋은날로 대종상영화제 신인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국내 각종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과 연기상 등을 40여 차례 받았다.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에 걸쳐 주연상을 받은 배우는 안성기가 유일하다.

기쁜 우리 젊은날(1987, 배창호)과 하얀전쟁으로 아시아태평양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두 차례 수상했으며, 2013년에는 대중문화예술 분야 최고 영예인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24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됐다.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 스크린쿼터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을 지내며 영화계 권익 보호에도 앞장섰으며,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 등으로서 사회적 활동도 펼쳤다. 친근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1983년부터 38년간 동서식품 커피 맥심의 최장수 모델로도 활동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된다. 유족으로는 아내 오소영 씨와 아들 다빈, 필립 씨가 있다.

장례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한국영화배우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원로배우 신영균이 명예위원장, 이갑성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 배창호 감독, 신언식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직무대행, 양윤호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이 위원장을 맡는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국민 배우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한다.

발인은 9일 오전 6시이며, 장지는 양평 별그리다다다.

[힐링경제=차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