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벨기에 브뤼셀 유럽연합(EU) 본부 [자료사진=연합뉴스]
유럽연합(EU) 정상들이 내년부터 2년간 우크라이나에 총 900억 유로(약 156조원)에 달하는 무이자 대출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러시아 동결 자산 활용 방식을 둘러싼 회원국 간 이견으로 첫날 합의가 불발됐으나, 심야에 극적으로 타결된 것으로 전해졌다.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19일(현지시간) 새벽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우리는 2026∼2027년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900억 유로를 제공하기로 합의했다"며 "우리가 한 약속을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코스타 상임의장은 합의 내용에 관한 구체적인 세부사항은 추가로 언급하지 않았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도 EU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대출 합의가 이뤄졌다고 확인했다.
메르츠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900억 유로의 무이자 대출이 제공될 것이라며, 이 자금이 향후 2년간 우크라이나의 군사 및 일반 재정 수요를 충족하는 데 충분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메르츠 총리는 또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배상금을 낼 때까지 유럽 내 러시아 자산 동결을 유지할 것이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로부터 배상을 받을 때만 EU로부터 받은 무이자 대출을 상환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번 합의는 EU가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EU 내에 동결된 러시아 자산 2천100억 유로(약 363조원)를 담보로 삼아 대출을 제공하는 방안을 논의한 끝에 이뤄졌다. 이는 러시아 동결 자산을 사실상 유동화하는 방식으로 전쟁 자금 부족에 직면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자는 구상이며, 러시아가 종전 이후 우크라이나에 거액의 배상금을 지급할 것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추진되고 있다.
다만 AFP 통신과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 정상들이 이번에 합의한 900억 유로 대출이 러시아 동결 자산을 직접 활용하지 않고, EU 자체 예산을 담보로 빌려주는 방식이라고 보도했다.
합의 과정에서 회원국 간 입장 차이가 뚜렷했다. 독일을 필두로 폴란드, 스웨덴, 네덜란드 등은 유럽 납세자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러시아 동결 자산을 활용하는 방안을 지지했다.
메르츠 독일 총리는 이날도 "우리는 기본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위해 유럽의 부채를 쓸지 러시아 자산을 쓸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며 "내 분명한 생각은 러시아 자산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도 "오늘 돈을 낼지, 내일 피를 흘릴지 선택해야 한다"며 유럽 지도자들에게 결단을 촉구했다.
반면 러시아 동결 자산 대부분을 보관하고 있는 벨기에는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EU 회원국에 묶인 러시아 자산 2천100억 유로 가운데 1천850억 유로(약 321조원)가 벨기에 중앙예탁기관 유로클리어에 묶여 있다.
벨기에는 향후 법적 분쟁과 러시아의 보복을 우려해 러시아 자산을 우크라이나에 내어주자는 EU의 설득에도 완강한 거부 입장을 취해왔다.
실제로 러시아는 이미 유로클리어를 상대로 18조1천700억 루블(약 336조5천억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며, 유럽 은행들을 상대로도 손해배상 청구에 나서겠다고 밝힌 상태다.
당장 내년에 쓸 재정이 부족한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번 EU 정상회의에 직접 참석해 조속한 결정을 촉구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이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면 입지가 더 약해진다"며 "우리가 무기를 살 돈이 부족해질수록 푸틴이 우리를 장악하려는 유혹은 더 커질 것"이라고 EU를 압박했다.
이번 합의로 우크라이나는 향후 2년간 군사 및 재정 운영에 필요한 대규모 자금을 확보하게 됐으며, EU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장기적 지원 의지를 재확인했다. 다만 러시아 동결 자산 활용 방식을 둘러싼 EU 내부의 이견은 여전히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힐링경제=김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