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윤석화 [자료사진=연합뉴스]
한국 연극계의 1세대 스타로 불리던 배우 윤석화가 뇌종양 투병 끝에 19일 별세했다. 향년 69세.
연극계에 따르면 윤석화는 19일 오전 9시 54분경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유족과 측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그는 2022년 10월 악성 뇌종양 수술을 받은 후 2년여간 투병 생활을 이어왔다.
고인의 별세 소식을 둘러싸고는 혼란이 있었다. 한국연극배우협회가 19일 새벽 고인이 전날 밤 별세했다고 발표했다가 오전에 이를 정정하며 "위중하나 호흡을 유지 중"이라고 밝혔으나, 결국 오전에 실제로 별세한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1975년 연극 '꿀맛'으로 데뷔해 반세기 동안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배우로 활약했다. 선배인 손숙, 박정자와 함께 한국 연극계를 이끈 여성 배우로, 연극계에 처음으로 '스타'라는 개념을 도입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고인은 '신의 아그네스', '햄릿', '딸에게 보내는 편지' 등 수많은 작품에서 뛰어난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1992년 모노드라마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재즈 여가수 멜라니를 연기하며 소극장 신화를 썼고, 1998년 '마스터 클래스'에서는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 역을 맡아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16년에는 예순의 나이로 '햄릿'의 오필리아를 연기해 화제를 모았다.
연극 무대를 넘어 뮤지컬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1995년 창작뮤지컬 '명성황후' 초연에서 타이틀롤을 맡아 작품의 원형을 만들었다. 이 작품은 한국 창작뮤지컬 최초로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며 누적 관객 200만 명, 1300회 이상의 공연을 기록했다. 고인은 '1대 명성황후'로 후배 배우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됐다.
드라마와 광고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커피 광고에 출연해 "저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여자예요"라는 대사를 유행시키며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고, 2018년 드라마 '우리가 만난 기적' 등에도 출연했다.
고인은 배우로서의 활동뿐 아니라 연극 제작과 연출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2002년 서울 대학로에 건축가 장윤규와 함께 소극장 '정미소'를 개관해 실험적 연극의 산실로 만들었다. 비록 2019년 만성적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지만, 이곳에서 '19 그리고 80', '위트' 등 신선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한국 연극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1995년에는 종합엔터테인먼트사 돌꽃컴퍼니를 설립해 만화영화 '홍길동 95'를 제작했고, 1999년에는 경영난을 겪던 공연예술계 월간지 '객석'을 인수해 2013년까지 발행인으로 활동했다.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를 연출했으며, 그가 제작에 참여한 '톱 해트'는 영국 로렌스 올리비에상을 받기도 했다.
고인은 사회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아들과 딸을 입양한 뒤 입양기금 마련을 위한 자선 콘서트를 꾸준히 개최하며 입양문화 개선에 앞장섰다.
뛰어난 연기력과 다방면에 걸친 활동으로 고인은 백상예술대상 여자연기상을 네 차례 수상했으며, 동아연극상, 서울연극제, 이해랑 연극상 등을 받았다. 2005년 대통령표창, 2009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연극·무용 부문)을 수상하며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고인은 2022년 7월 연극 '햄릿' 공연 후 영국 출장지에서 쓰러져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같은 해 10월 수술을 받고 투병 생활을 이어왔다. 투병 사실을 공개한 뒤 2023년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연극 '토카타'에 5분가량 우정 출연한 것이 마지막 무대가 됐다.
과거 인터뷰에서 고인은 "일흔 살이 넘으면 동네 꼬마 세 명이 관객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언제 어디서든 설 수 있는 무대, 나눌 수 있는 무대만 있으면 서겠다"고 말했으며, "아마 천국에 가서도 나는 배우를 하고 있을 거예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남편 김석기 전 중앙종합금융 대표와 아들, 딸이 있다.
한국 연극계는 1세대 스타이자 연극의 대중화를 이끈 선구자를 잃은 슬픔에 잠겨 있다.
[힐링경제=차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