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호 경찰청장 탄핵심판 선고기일 [자료사진=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18일 조지호 경찰청장을 파면했다.

작년 12월 국회가 탄핵 소추한 지 371일 만이다.

헌재는 이날 오후 2시 대심판정에서 탄핵심판 선고기일을 열고 재판관 9인의 전원일치 의견으로 국회의 탄핵소추를 인용하는 결정을 내렸다.

파면의 효력은 즉시 발생해 조 청장은 즉시 직위를 잃었다. 경찰청장이 국회의 탄핵소추로 파면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헌재는 비상계엄 당시 조 청장이 국회 봉쇄 및 출입 통제를 지시해 국회의원들이 담장을 넘어가야 했거나 아예 들어가지 못했고, 본회의도 지연됐다고 인정했다.

이어 "이런 행위는 대통령의 위헌·위법적 지시를 실행하기 위한 것으로 대의민주주의와 권력분립 원칙에 위배되고,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 등 헌법상 권한을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조 청장 측은 우발상황 대비를 위해 국회에 경찰력을 배치했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헌재는 "피청구인은 안전가옥 회동을 통해 윤 전 대통령이 병력을 동원해 국회와의 대립 상황을 타개할 의도로 계엄을 선포한다는 것과 국회 등에 군이 투입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며 "윤석열이 경력 배치를 지시한 목적 역시 군의 국회 진입을 쉽게 하려는 의도임을 알 수 있었다"고 못 박았다.

국회의원 체포 지시를 거부하고 국회의원의 월담을 사실상 방치하는 등 이른바 세 차례 항명으로 오히려 계엄 해제에 기여했다는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다.

조 청장이 안가 회동 이후 김봉식 전 서울청장으로부터 기동대 현황을 보고받은 점, 윤승영 전 국가수사본부 기획조정관으로부터 국군방첩사령부의 수사요원 및 체포조 지원 요청을 보고받고 승인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헌재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과천청사 및 수원 선거연수원에 경찰을 배치한 것에 대해서도 "위헌·위법한 계엄에 따라 선관위에 진입한 군을 지원해 선관위의 직무 수행과 권한 행사를 방해해 선관위 독립성을 침해했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피청구인은 계엄에 따라 군이 수사를 위해 선관위에 투입되는 경위의 적법성을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음에도, 경력을 배치해 출입을 통제하도록 했다"며 우발 대비 목적으로 경력을 배치했다는 조 청장의 주장을 배척했다.

짧은 시간 내에 계엄의 위헌·위법성을 판단하기 어려워 윤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도 경찰 조직 내 최고 책임자로서 지닌 고도의 정보 접근성과 전문성을 고려하면 이유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계엄이 선포되자마자 190명의 의원은 비상계엄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시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모여들었고, 시민들 역시 계엄에 저항하기 위해 국회로 모였고, 현장에 출동한 군경들도 소극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고 짚었다.

이어 "이를 통해 계엄이 신속하게 해제될 수 있었다"며 "이런 사정들은 계엄의 위헌·위법성이 평균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회 일반인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던 것임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오히려 이러한 주장은 경찰청장으로서 책무를 방기했음을 인정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질타했다.

헌재는 "피청구인의 행위는 경찰청장에게 부여된 헌법수호의 사명과 책무를 사실상 포기한 것"이라며 "이는 계엄 선포 전후의 사정이나 피청구인의 상황 인식 등 어떤 사정에 비춰 보더라도 정당화되거나 용인될 수 없다"고 했다.

헌재는 조 청장의 헌법과 법률 위반이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하다고 판단했다.

파면으로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인정된다는 것이다.

헌재는 "피청구인의 행위는 그 자체로서 대의민주주의와 권력분립 원칙에 대한 중대한 위반에 해당하고, 그로 인해 헌법 질서에 미친 부정적 영향도 엄중하다"며 "국회가 제 기능을 충실히 실현할 수 없도록 해 권력분립 원칙도 정면으로 위반했다"고 밝혔다.

헌재는 "피청구인은 대통령 윤석열이 정치적 상황을 타개할 의도로 실행한 계엄과 포고령의 위헌·위법성을 인식하고도 오히려 경찰을 동원해 시민과 대치하도록 하고, 조직 전체가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을 상황을 초래했다"며 "경찰 직무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수행될 것이라고 믿어온 국민 신뢰를 회복하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희생과 봉사에 전념해온 경찰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는 엄정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또 "경찰청장은 대통령에게 지시를 받는 경우 스스로의 지위와 권한에 비춰 자신의 직무범위 안에서 헌법과 법률에 반하는 지시를 판별해야 한다"며 "그럼에도 피청구인은 위헌·위법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근간을 해치는 정도로 중대하고 명백히 위헌인 계엄을 실행하는 행위에 가담했다"고 질타했다.

다만 작년 11월 9일 전국노동자대회 폭동 유도 여부 및 집회 제한 여부에 대해서는 조 청장이 해산명령을 내렸거나 체포에 관여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소추 사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 청장은 파면 결정 뒤 입장문을 내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며 "경찰과 공직사회 모두 저와 같은 사례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밝혔다.

국회 탄핵소추위원장으로 심판정에 나온 추미애 법제사법위원장은 "헌재 결정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책무가 굉장히 엄중하다는 것"이라면서 "법질서를 보호해야 할 경찰청장이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하고 대통령의 위헌·위법한 행동을 그대로 따랐다는 것 자체가 아주 중대한 헌정 도전이라는 이유를 밝혔다"고 말했다.

추 위원장은 "조지호 경찰청장보다 더 법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법무부 장관이나 국무총리에 대해 위법성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식으로 영장을 기각하는 중앙지법 영장담당 판사들이 교육을 받아야할 것 같다"며 "판결 이유를 중앙지법 판사들이 잘 숙지해서 재판이 신속하고 엄중하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촉구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조 청장은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가담을 이유로 작년 12월 12일 국회에서 탄핵 소추됐다. 이후 헌재는 3차례 준비기일과 3차례 변론기일을 열었다.

조 청장은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올해 1월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혈액암을 앓는 그는 같은 달 법원의 보석 허가로 불구속 상태로 재판받고 있다.

이날 선고로 헌재는 비상계엄과 관련한 탄핵심판 사건을 1년 만에 모두 매듭지었다.

윤 전 대통령은 4월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파면됐고, 박성재 전 법무장관과 한덕수 전 총리 탄핵소추는 기각됐다.

[힐링경제=하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