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 평균 1천700원대 돌파 [자료사진=연합뉴스]

올해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국내 기업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영업이익이 줄어들고, 경제 전반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이 장기 경영계획 수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19일 오전 11시45분 현재 1,465.00원으로 전날보다 오름세를 나타냈다.

연평균 환율이 외환위기 시기를 넘어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기업들도 장기 경영계획을 재검토하는 등 비상이 걸렸다.

국내 정유업계는 연간 10억배럴 이상의 원유 전량을 해외에서 달러화로 사들이고 있어 환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분기보고서를 통해 3분기 말 기준으로 환율이 10% 오를 시 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이 약 1천544억원 감소하는 영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정유업계는 생산 제품의 절반 이상을 수출해 환율로 인한 차익을 얻고 있고, 중장기적으로도 파생상품 투자 등을 통해 헤징(위험 회피)에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내년도 경영 계획을 환율 1,400원 수준으로 놓고 수립하고 있지만, 매달 전월 평균 환율 기준으로 기준을 조정하고 있어 변동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항공업계 역시 환율 상승에 큰 부담을 체감하는 업종 중 하나다.

통상 항공사 영업비용 중에서 가장 큰 약 30%를 차지하는 유류비를 비롯한 항공기 리스료, 정비비, 해외 체류비 등 고정 비용을 달러로 결제한다. 여기에 환율이 오르면 여행 심리가 위축되면서 항공 수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한항공의 경우 올해 3분기 말 기준 순외화부채는 약 48억달러로, 환율이 10원 오르면 약 480억원의 외화평가 손실이 발생한다.

대한항공은 환율 대비 통화·이자율 스와프 계약을 맺는 등 일정 부분에 대해 헤지 전략을 실행해 영향을 완화하고 있다.

각 항공사는 고환율 기조가 이어지면서 현재 수립 중인 내년 사업 계획 가운데 환율 대응을 더욱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해운업계에는 고환율 기조가 일부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달러 가치가 높아지면서 운임을 원화로 환산할 때 환차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철강재 생산에 필요한 철광석과 제철용 연료탄 등 원재료를 수입하는 철강 업계도 미국의 50% 부품관세 부과에 환율 급등 부담까지 져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수입 비용이 늘면 원가 부담이 커지는 데다 글로벌 경기 둔화 속에 철강 수요까지 위축되면서 원자잿값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기 어려운 구조여서 부담이 더하다.

다만 대형 철강사들은 철강 제품을 수출해 벌어들이는 외화로 유연탄과 철광석 등 주요 원료를 사들이는 '내추럴 헤지'를 통해 환율 변동 영향을 최소화하려 대응하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환율 흐름 변동에 대한 환위험 모니터링 강화, 시나리오별 전망을 통해 환율 변동성 확대가 경영 활동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환율에 식품 기업들은 갈수록 원자재 가격 부담이 커지고 있다. 국내 식품 제조업의 국산 원재료 사용 비중은 31.8%로 밀, 대두, 옥수수, 원당 등 주요 원재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롯데웰푸드는 3분기 보고서를 통해 원달러 환율 10% 변동시 35억원의 세전 손익 영향이 있다고 공시했다.

CJ제일제당은 사업보고서에서 원달러 환율이 10% 상승하면 세후 이익이 13억원 감소한다고 밝혔다.

오뚜기도 고환율 상황에 따라 전체적으로 수익성 악화가 이어지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원료와 부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품목은 고환율로 수익성이 악화했고 수출 증가폭은 점진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스타벅스를 운영하는 SCK컴퍼니는 원가 상승 영향에 따라 3분기 영업이익이 600억원으로 9.6% 감소했다.

스타벅스의 원가 상승은 커피 원두 국제 시세가 고공행진한데다 강달러 기조가 지속하며 원두 수입 단가가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환율 상승에 따라 원가 부담이 높아졌지만 다수 식품 기업들은 올해 상반기 탄핵 정국의 정치적 혼란기 속에 가격을 인상한 터라 단기간 내 가격을 더 올리기도 쉽지 않다고 말한다.

한 업체 관계자는 "내년 사업 보고서를 세우는데 환율을 낙관적으로 보진 않는 것 같다"면서 "어떻게든 내부적으로 비용을 효율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환율 상승으로 수입 먹거리 물가도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축산유통정보에 따르면 국제 시세가 오른데다 환율까지 상승하면서 미국산 갈비살(냉장)은 100g당 4천846원으로 9.7% 상승했으며 평년보다는 22.4% 비싸다.

면세업계는 사업에 직격탄을 맞았다.

강달러 상황이 이어지면서 면세 쇼핑의 최대 장점인 '가격 이점'은 사라진 지 오래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로 껑충 오르면서 달러 기준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면세점의 일부 제품은 백화점보다 비싼 '가격 역전' 현상도 발생했다.

이에 더해 '단체 쇼핑 관광' 중심이던 방한 여행 패턴이 '개별 경험·체험 관광'으로 바뀌면서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먹거리, 문화 체험에 지출을 늘렸고 이에 따라 면세점의 객단가는 더 감소했다.

면세점들은 관광객의 쇼핑 부담을 낮추고자 할인과 쿠폰 발급 행사, 환율 보상 혜택을 강화했으나 환율 영향을 상쇄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롯데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지난해, 현대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은 올해 각각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수입 식품을 판매하는 대형마트들도 대응 방안 마련에 분주하다.

이마트는 연간 수매 계약을 통해 아몬드와 냉동 과일, 올리브유 등 주요 원물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가격으로 조달하고 있다.

롯데마트는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미국산 소고기 가격이 상승한 점을 고려해 호주산 소고기 매입량을 확대했다.

화장품 업계는 원료를 수입할 때 달러 고환율에 따른 손해가 예상된다.

한 화장품 기업 관계자는 "달러로 거래되는 글리세린과 지방산, 계면활성제 등이나 유럽에서 수입하는 유화제는 환율 변동에 따른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환율은 원료 수입에는 타격이지만, 최근 K뷰티 인기를 타고 증가한 수출에는 긍정적인 영향도 있다.

또 다른 화장품 기업 관계자는 "환율 상승에 따라 해외 매출은 증가하기 때문에 원부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영향을 상쇄하는 측면이 있다"며 "장기적인 영향은 지켜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패션업계 역시 수입과 수출이 동시에 이뤄지는 만큼 복합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LF 관계자는 "캐시미어나 울 등 일부 고급 원단과 부자재는 공급처를 분산하고, 구매 시점도 나눠 단기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다만 고환율이 장기화할 경우 비용 구조에 영향이 생길 수 있어 이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 체계를 지속해 점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소벤처기업부도 고환율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특히 철강이나 원유 등 원자재를 수입하는 중소 제조업체의 경우 당장 악영향이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검토 중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원부자재를 수입하는 중소기업에 타격이 있는 상황이어서 환율 변동과 이에 따른 기업 영향을 계속 모니터링 하고 있다"며 "경영 자금을 지원하고, 환율 변동에 따른 안내나 교육을 계속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환율은 구조적 영향이 크다"며 "단기 대응에는 정책 수단에 한계가 있고, 중소기업의 스마트 팩토리나 연구개발 지원 등 기업 혁신을 포함한 장기적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예금 금리가 오르면서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이달 들어 보름 새 9조원 가까이 늘었다.

5대 은행의 17일 기준 정기예금 잔액은 974조1천643억원으로, 지난달 말보다 8조5천954억원 늘어나 하루 평균 약 5천56억원씩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힐링경제=윤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