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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과 식당에서 파는 소주와 맥주 가격이 장기간의 하락세를 끝내고 다시 상승 전환점을 맞았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과 경기 침체로 극심한 소비 부진을 겪어온 외식업계가 생존을 위해 펼쳐온 '미끼 전략'이 막을 내리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8일 통계청이 발표한 6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외식 소주 품목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0.1% 상승했다. 이는 지난해 9월 마이너스 0.6%를 기록한 이후 9개월간 이어진 하락세가 반전된 것이다. 외식 맥주 역시 지난달 0.5% 오르며 지난해 12월 마이너스 0.4% 이후 7개월 만에 상승으로 돌아섰다.

1외식 소주와 맥주 가격의 이번 반등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크지만, 이전까지의 상승 기록을 고려하면 더욱 주목할 만하다. 외식 소주 가격은 2005년 8월 0.1% 상승을 시작으로 지난해 8월 0.6% 상승까지 무려 19년 1개월 연속으로 올랐다. 외식 맥주는 이보다 더 길어서 1999년 12월 1.3% 상승부터 지난해 11월 0.9% 상승까지 25년간 쉬지 않고 상승세를 이어왔다.

이처럼 20여 년간 지속되어온 술값 상승 흐름이 갑자기 하락으로 반전된 것은 전례 없는 현상이었다. 특히 소주는 수십 년간 한국인의 대표적인 서민 술로 자리매김해온 만큼, 그 가격 하락은 외식업계가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지표였다.

소매점에서 파는 소주와 맥주 가격도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소매점 소주 가격은 16개월 동안 하락하다가 지난 5월에 0.2% 오른 데 이어 지난달에도 0.1% 상승했다. 소매점 맥주 가격은 지난달 상승률이 3.1%로 지난해 10월 4.3% 이후 8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이는 외식업계뿐만 아니라 소매업계에서도 비슷한 가격 전략이 펼쳐졌음을 의미한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도 소비자를 유인하기 위해 주류 가격을 할인하는 프로모션을 장기간 지속해왔다가 최근 들어 정상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나타난 술값 하락과 반등 현상은 외식업계가 극심한 소비 부진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으로 분석된다. 자영업자들이 손님을 잡으려고 술을 무료로 제공하거나 할인하는 '미끼 전략'을 사용하면서 물가지수가 내린 것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업체별로 영업 프로모션을 위해 술값을 할인하곤 하는데 통상 행사 기간이 1∼2개월인데 비해 이번엔 꽤 길게 이어졌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인 프로모션 기간을 훨씬 넘어서는 장기간 할인이 이어진 것은 그만큼 업계의 사정이 어려웠음을 보여준다.

이번에 술 물가가 반등한 것은 이같은 미끼 전략이 끝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자영업자들이 더 이상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할인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거나, 소비심리가 일부 개선되면서 정상 가격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술값 할인과 원복은 대도시권에서 특히 활발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에서는 소주 가격이 지난해 6월 마이너스 0.8%부터 하락하기 시작해 12월에는 마이너스 8.8%를 기록했다. 이후 점차 하락 폭을 좁혀서 지난달에는 마이너스 3.1%를 나타냈다.

부산에서는 이미 작년 3월 마이너스 3.1%부터 내려가서 약 1년간 하락세가 이어지다가 지난 3월 2.8%부터 반등했다. 이는 지역별로 경기 상황과 소비 패턴에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에서 소주 가격이 한때 마이너스 8.8%까지 떨어진 것은 매우 파격적인 수준이다. 이는 단순한 할인을 넘어서 거의 덤핑 수준의 가격 경쟁이 벌어졌음을 의미한다. 수도권 지역의 치열한 경쟁과 높은 임대료 부담 등이 이런 극단적인 가격 전략을 유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외식 술값 할인 종료는 새 정부 출범과 맞물린 소비심리 개선 기대감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은행의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으로 100 이하로 급락한 뒤 4월 93.8, 5월 101.8, 6월 108.7로 석 달 연속 개선되는 흐름을 보였다.

특히 계엄 사태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새로운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형성되면서 소비자들의 심리가 점차 회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외식업계에게도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해 더 이상 손해를 감수하는 할인 전략을 펼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소비자심리지수가 100을 넘어서는 것은 소비자들이 현재 경기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특히 6월 108.7이라는 수치는 상당한 개선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는 외식업계의 매출 회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론 일부 한계 자영업자가 술값 할인 행사를 하고도 버티지 못해 폐업하면서 가격 원복 효과가 나타난 사례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세청 국세통계포털(TASIS) 사업자 현황을 보면 지난 5월 호프주점은 2만1천891개로 1년 전보다 1천982개, 즉 8.3% 감소했다.

5월 숙박음식업 취업자가 3년 6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인 6만7천명 감소한 이유가 주점 및 음식점업 취업자 수 축소 때문이라고 통계청이 분석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는 업계 전체의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호프주점이 1년 사이에 2천개 가까이 사라진 것은 매우 큰 변화다. 이는 단순히 경기 침체를 넘어서 업계 자체의 생태계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도한 가격 경쟁으로 버티지 못한 영세 업체들이 시장에서 퇴출되면서, 남은 업체들이 다시 정상적인 가격 체계로 돌아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빚 부담 등으로 궁지에 몰린 영세 자영업자들이 극단적 술값 할인 전략까지 동원했던 것으로 해석된다"며 "대선 이후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일부 숨통이 트이자 가격을 원래대로 돌린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그동안의 술값 할인이 단순한 마케팅 전략을 넘어서 생존을 위한 극단적 수단이었음을 시사한다. 자영업자들이 당장의 현금 흐름을 확보하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할인을 지속했다가, 경기 상황이 일부 개선되면서 정상화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극단적 할인 전략'이라는 표현은 업계의 절박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일반적인 경쟁 차원의 할인을 넘어서 거의 자해에 가까운 수준의 가격 인하가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이번 술값 반등이 외식업계 전체의 회복을 의미하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상승률 자체는 미미한 수준이고, 여전히 많은 업체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십 년간 지속되어온 상승 흐름이 하락으로 반전되었다가 다시 상승으로 돌아선 것은 분명 의미 있는 변화다. 특히 소비자심리지수 개선과 함께 나타난 현상인 만큼, 외식업계가 최악의 터널을 벗어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여전히 많은 자영업자들이 높은 임대료와 인건비 부담,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한 구조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술값 반등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지, 아니면 지속적인 회복의 출발점이 될지는 앞으로의 경제 상황과 소비 패턴 변화에 달려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동안 누렸던 할인 혜택이 줄어들면서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특히 외식 빈도가 높은 직장인들에게는 가계비 증가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술값 정상화는 외식업계의 건전한 생태계 복원이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다. 과도한 가격 경쟁으로 인한 업계 전체의 수익성 악화가 해소되면서, 서비스 품질 개선이나 근로 환경 개선 등에 투자할 여력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술값 반등은 한국 외식업계가 팬데믹과 경기 침체라는 큰 시련을 겪으면서 벌어진 극단적 가격 경쟁의 종료를 알리는 신호로 해석된다. 앞으로 업계가 어떻게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갈지 주목된다.

[힐링경제=윤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