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한국을 포함한 14개국에 강력한 관세 메시지를 전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한국산 제품에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관세 서한'을 한국 정부에 보내며, 이를 8월 1일부터 시행하겠다고 공식 통보했다.
이번 조치는 당초 7월 9일로 예정되어 있던 관세 부과 시점을 약 3주 연장한 것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과의 무역 협상에 더 많은 시간을 주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관세율 25%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2일 발표한 수준과 동일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공개한 무역 관련 서한에서 "우리의 관계는 유감스럽게도 상호주의와 거리가 멀었다"며 한국과의 무역 관계에 대한 불만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이 서한은 이재명 대통령을 수신자로 지정되어 있어 한국 정부에 대한 직접적인 압박 메시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한에서 "2025년 8월 1일부터 우리는 미국으로 보낸 모든 한국산 제품에 겨우 25%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며 이 관세는 모든 품목별 관세와 별도"라고 명시했다. 여기서 '겨우 25%'라는 표현을 사용해 이 수준도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한 도입부에서 "이 서한을 당신에게 보내는 것은 나에게 큰 영광이다"라며 외교적 수사를 사용했지만, 곧바로 "미국이 당신의 위대한 나라와 상당한 무역적자가 있는데도 한국과 계속해서 협력하기로 동의했다"며 무역 불균형 문제를 지적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부과가 확정적이지 않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당신이 지금까지 미국에 닫혀 있던 무역 시장을 개방하고, 당신의 관세와 비관세 장벽, 정책과 무역 장벽을 없애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어쩌면 이 서한의 조정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 관세는 당신 나라와 우리의 관계에 따라서 위로든 아래로든 조정될 수 있다. 당신은 결코 미국에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여 협상의 여지를 강조했다. 이는 한국이 미국의 요구에 응할 경우 관세율을 낮추거나 아예 부과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기업들이 미국 내에서 제품을 생산할 경우 관세를 부과하지 않겠다는 당근도 제시했다. 그는 "한국이나 당신 나라에 있는 기업들이 미국에서 제품을 만들거나 제조하기로 결정한다면 관세는 없을 것"이라며 "실제 우리는 인허가를 신속하고 전문적이며 정례적으로 해주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부과의 근거로 내세운 것은 미국의 대한국 무역적자다. 그는 "우리는 한국과의 무역 관계를 논의할 수 년이라는 시간이 있었으며 우리가 한국의 관세와 비관세 장벽, 정책과 무역장벽이 초래한 이런 장기적이고 매우 지속적인 무역적자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은 "25%라는 숫자는 우리가 당신의 국가와 가지고 있는 무역적자의 차이를 없애는 데 필요한 것보다 턱없이 작다는 점을 이해하기를 바란다"고 주장했다. 이는 현재 제시한 25% 관세율도 미국이 원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로, 한국의 양보가 없을 경우 더 높은 관세율도 고려할 수 있다는 압박으로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미국에 관세로 보복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경고했다. 그는 "어떤 이유에서든 당신이 한국의 대미 관세를 올리기로 결정한다면 당신이 관세를 얼마나 올리기로 선택하든 우리가 한국에 부과한 25%에 그만큼이 더 추가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또한 관세를 피하려고 제3국을 경유하는 방식으로 환적한 제품에는 25%보다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한국 기업들이 우회 수출을 통해 관세를 회피하려는 시도를 원천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관세 서한을 보낸 국가는 총 14개국이다. 다른 나라에 보낸 서한도 한국에 보낸 서한과 내용이 대체로 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개별 국가와의 양자 협상보다는 다자간 압박을 통해 무역 정책을 추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관세율 면에서는 국가별로 차이를 보였다. 일본과 말레이시아의 경우 상호관세가 원래 24%였는데 이날 서한에서 25%로 1%포인트 상향 조정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상호관세가 30%로 변화가 없었고, 라오스는 기존 48%에서 40%로, 미얀마는 44%에서 40%로, 카자흐스탄은 27%에서 25%로 하향조정됐다.
캄보디아, 태국, 방글라데시, 세르비아, 인도네시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튀니지 등에도 서한을 보냈다. 이처럼 다양한 국가에 서로 다른 관세율을 적용한 것은 각국의 무역 규모와 적자 수준, 그리고 협상 여건을 고려한 맞춤형 전략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상호관세 유예 연장을 요구해온 한국 정부는 남은 기간 협상에 진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 서한으로 8월 1일까지 사실상 상호관세 부과 유예가 연장된 것으로 보고, 관세로 인한 불확실성을 조속히 해소하기 위해 남은 기간에 상호 호혜적인 협상 결과 도출을 위해 협상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한국 정부가 이번 유예 연장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간 한국 정부는 90일 유예 기간 내에는 협상을 타결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유예 기간 연장을 요청해왔는데, 이번 서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계속 협상하겠다는 입장을 시사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번 관세 서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무역 정책이 2기 행정부에서도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지난 4월 9일 상호관세 부과를 90일 유예한 뒤 한국에는 지금까지 기본관세 10%만 부과한 상태로 무역 협상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앞으로 한미간에 새로운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로 8월 1일이 되면 원래대로 25%를 부과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는 협상 카드로서 관세를 활용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전형적인 협상 전략으로 평가된다.
한국에 대한 25% 관세 부과는 양국 간 무역뿐만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에도 상당한 파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자동차, 화학제품 등이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한국 기업들이 미국 내 생산 기지 확대를 검토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내 생산 시 관세를 부과하지 않겠다고 명시한 만큼, 한국 기업들은 현지 생산 확대를 통해 관세 부담을 피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8월 1일까지 약 3주 남은 상황에서 한미 양국이 어떤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여지를 남겨둔 만큼 한국 정부는 미국 시장 개방 확대, 미국산 제품 수입 증대 등의 카드를 활용해 관세 부과를 피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수준의 양보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는 미지수다. 특히 한국의 농업 시장 개방이나 서비스업 분야 규제 완화 등은 국내 정치적 부담이 큰 사안들이다.
결국 이번 관세 서한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외 무역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무역 파트너 국가들도 미국의 강경한 무역 정책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힐링경제=김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