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 [자료사진=연합뉴스]

지난 3월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국민연금 개혁안이 18년 만에 국회 문턱을 넘어서며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보험료율을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43%로 상향하는 '더 내고 더 받는' 방식의 이번 개혁은 그동안 미뤄져 온 국민연금 제도의 지속가능성 문제에 대한 첫 번째 응답이었다.

하지만 이 극적인 타결 이면에는 미래 세대인 MZ세대의 깊은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미 온라인 공간에서 '고갈'과 '개혁'을 외치며 연금 제도의 미래에 대한 절박한 목소리를 내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개혁이 위태로운 민심 위에서 이뤄졌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8일 국민연금연구원이 발표한 '국민연금 인식에 대한 키워드 분석' 보고서는 MZ세대의 이러한 속내를 데이터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연구에 따르면 MZ세대가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국민연금 관련 담론은 2018년을 기점으로 2023년에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논의의 핵심은 '연금개혁'으로 뚜렷하게 모아졌다.

연구진이 서울대, 고려대 등 주요 대학 커뮤니티와 디시인사이드, 네이트판 등 개방형 커뮤니티의 게시글을 분석한 결과는 청년층의 관심 증가를 수치로도 확인해준다. 대학 커뮤니티의 국민연금 관련 게시글은 2018년 117건에서 2023년 996건으로 무려 8.5배 급증했다. 개방형 커뮤니티에서도 같은 기간 143건에서 613건으로 4.3배 늘어나며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이는 당시 2055년으로 예측되던 기금 소진 시점에 대한 청년층의 깊은 불안감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자신들이 노후를 맞을 시기에 국민연금 기금이 바닥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위기감이 온라인 담론의 급격한 증가로 이어진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담론 내용의 질적 변화다. 2018년 대학 커뮤니티에서는 '국민연금 공단 취업' 등 다소 산발적인 주제가 논의됐으나, 2023년에는 '연금개혁'과 '기금 고갈'이라는 키워드가 강력한 군집을 형성했다. 이는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청년 세대의 핵심 관심사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주제별 모델링 분석 결과를 보면 대학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주로 국민연금 납입과 수령, 제도에 대한 신뢰 문제, 기금 운용, 연금개혁에 대해 논의했다. 개방형 커뮤니티에서는 세대 간 연금 부담, 노후소득 보장, 재정 안정성과 지속가능성, 연금개혁 등이 주요 주제로 도출됐다.

두 집단 모두에서 '연금개혁'이 핵심 주제로 나타난 것은 기금 소진에 대한 공통된 우려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들의 관심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자신들의 미래와 직결된 절실한 문제 의식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번 연구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MZ세대가 사용하는 키워드의 극단성이다. 이들은 "이민", "폰지사기", "폐지"와 같은 강렬한 표현을 통해 현행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깊은 불신을 드러냈다. 이는 막연한 불만이 아니라 기금 고갈이라는 현실적인 위협에 기반한 구체적인 우려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특히 '폰지사기'라는 표현은 현재 세대가 내는 돈으로 기존 세대에게 연금을 주는 부과방식 연금제도의 구조적 특성을 청년층이 얼마나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민'이라는 키워드는 아예 이 제도를 포기하고 다른 선택지를 모색하려는 극단적 사고까지 엿보게 한다.

결국 지난 3월의 연금 개혁은 이처럼 들끓는 여론을 배경으로 이뤄진 셈이다. 온라인 공간에서 표출된 MZ세대의 불안감과 불신은 정치권이 더 이상 연금 개혁을 미룰 수 없게 만드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18년간 지속된 개혁 논의의 교착상태를 깨트린 것은 바로 이들의 목소리였다고 볼 수 있다.

연구진은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를 분석한 만큼 MZ세대 전체의 의견을 대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온라인 네이티브 세대인 MZ세대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이들의 온라인 담론은 세대 전체의 정서를 상당 부분 반영한다고 봐야 한다.

18년 만에 이뤄진 연금 개혁의 첫 단추는 끼워졌지만,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완전히 담보하고 MZ세대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진짜 과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번 개혁안만으로는 기금 고갈 시점을 2055년에서 2070년대로 연장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MZ세대가 보여준 제도에 대한 깊은 불신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단순히 수치상의 개선을 넘어서 이들이 국민연금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제도로 만드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다.

이번 연구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미래 세대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분석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온라인 담론 분석을 통해 드러난 MZ세대의 절박한 목소리는 앞으로의 연금 제도 개편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민연금 개혁의 여정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미래 세대의 신뢰를 회복하고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힐링경제=하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