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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 전형 확대가 입시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으로 도입됐지만, 실제로는 부모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대학 입학 방식과 N수 여부까지 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정시 확대가 오히려 사교육 의존도를 높이고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교육개발원(KEDI) 남궁지영 선임연구위원 등이 최근 발표한 ‘대입 N수생 증가 실태 및 원인과 완화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N수생 비율이 높고 정시 전형을 통해 대학에 진학한 비율도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한국교육종단연구 패널 데이터를 바탕으로, 2021학년도 대학 입학생들을 추적 조사했다. 그 결과, 당시 입학생 중 10.8%가 대학 입학 후 휴학이나 자퇴를 선택했으며, 이들 중 40.5%가 ‘재수 준비’를 주된 이유로 꼽았다. 사실상 입학 후에도 원하는 대학이나 학과 진학을 위해 ‘반수’나 ‘재수’를 택한 경우가 적지 않다는 뜻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같은 N수 선택이 부모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학생들을 부모 사회적 지위 기준에 따라 1분위(가장 낮음)부터 5분위(가장 높음)까지 5개 그룹으로 나누고, 이들의 반수·재수 비율을 비교했다.

그 결과, 1분위 학생 중 N수를 선택한 비율은 10.7%에 불과했지만, 5분위 학생 중에는 무려 35.1%가 반수나 재수를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계층일수록 더 많은 기회를 확보하고 있다는 의미다.

정시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한 비율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나타났다. 재수생 가운데 5분위 학생의 69.0%가 정시 전형으로 입학한 반면, 1분위 학생은 35.8%에 그쳤다. 또한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사교육 참여율이 높았고, 의약계열 및 수도권 일반대학 진학률 역시 높았다.

보고서를 작성한 남궁 연구위원은 “정시는 수능 점수가 단 1점 차이로도 당락을 결정짓는 구조이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공정해 보일 수 있다”며 “그러나 실제로는 수능 준비에 더 많은 자원과 시간을 투입할 수 있는 계층에게 유리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교육이 가능한 가정환경, 재수나 삼수를 감내할 수 있는 여건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정시 전형은 오히려 교육 기회의 불균형을 고착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시 전형 확대는 2019년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자녀의 입시 비리 의혹 이후, 교육부가 대입의 공정성을 강화하겠다며 서울 주요 16개 대학의 정시 비율을 40%로 늘리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그러나 이 정책이 현실에서는 또 다른 불평등을 낳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연구진은 정시 확대가 오히려 상위권 대학 진학 수요를 자극하고, 수능 중심의 입시 경쟁을 심화시켜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학업 중단율 증가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무관하게 수능 성적만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현행 정시 제도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연구진은 현재 서울 주요 대학에 적용되고 있는 정시 40% 확대 정책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수능은 절대평가 형태의 자격고사로 전환하고, 수시 전형을 통해 학습자의 다양한 경험과 잠재력을 반영할 수 있는 입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보고서는 입시 제도가 표면적으로는 공정해 보일 수 있으나, 실제 작동 방식에서는 계층 간 격차를 키우는 구조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단순한 전형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학생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그 배경이 된 사회적 자본과 경제력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보다 근본적인 대입 제도 개편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힐링경제=하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