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간담회서 발언하는 이창용 한은 총재 [자료사진=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시사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연 2.75%에서 2.50%로 0.25%포인트 인하한 직후, 이 총재는 “향후 금리 인하 폭이 조금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며 통화완화 기조 지속을 예고했다.
29일 오전 서울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총재는 “당초 예상보다 성장세가 크게 약화됐다”며, “이번 금리 인하 결정은 경제 상황의 악화를 반영한 조치”라고 밝혔다. 이날 금통위는 만장일치로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했다.
이 총재는 중장기적인 금리 방향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3개월 이후 금리 경로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밝히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앞으로의 금리 인하 속도와 폭은 데이터에 근거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금통위원 6명 중 4명이 “3개월 내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이들은 “경기가 예상보다 훨씬 나빠졌기 때문에 금융안정을 고려하되 추가 인하로 경기 진작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반면, 나머지 2명은 “현재의 금리를 유지하면서 경제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5%포인트 낮추는 ‘빅컷’을 단행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너무 빠른 인하는 부동산 가격 상승 등 과거의 실수를 반복할 우려가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통화완화로 인한 부동산 가격 자극과 가계부채 확대에 대한 경계심은 여전히 강하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은 이날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5%에서 0.8%로 대폭 낮췄다. 이 총재는 “0.8% 성장률은 민간소비가 대부분 기여하고 순수출은 0%로 가정했다”며, “내년엔 순수출 기여도가 오히려 -0.3%포인트로 나빠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민간소비는 1분기를 저점으로 서서히 반등할 것이고, 건설 경기도 하반기에 바닥을 다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다만 이번 경제전망에는 첫 번째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만 반영돼 있어, 향후 정책 변화에 따라 성장률은 변동 가능성이 있다.
이 총재는 이번 금리 인하가 자산 시장, 특히 부동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유동성 공급이 실물경기 회복보다 자산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금통위원들은 서울 부동산 가격과 가계부채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최근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가 자칫 부동산 투기 수요를 자극하고 가계부채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 총재는 “통화정책이 특정 지역 부동산 가격을 자극하지 않도록 새 정부와도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 총재는 이날 간담회에서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그는 “원칙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반대하지 않으며, 필요에 따라 한국은행이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비은행기관이 이를 자유롭게 발행할 경우,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은 사실상 화폐의 대체재이며, 만약 부도가 나거나 문제가 발생하면 지급결제 시스템 전체의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총재는 “현재로선 은행권을 중심으로 감독 가능한 방식으로 발행을 시작해야 한다”며, 한국은행이 추진 중인 ‘프로젝트 한강’의 예금토큰이 그 시범 모델이라고 소개했다.
[힐링경제=윤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