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에 깨져버린 범종 [자료사진=연합뉴스]

지난 3월 영남 지역을 강타한 대형 산불로 인해 수천 년의 역사를 품은 국가유산들이 불길에 휩싸였다. 그 결과, 복구에만 약 500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유산청은 8일, 행정안전부 등과 함께 진행한 피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국가유산 피해 복구에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약 488억 원이 필요할 것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이번 산불로 피해를 입은 국가유산은 총 36건이다.

이 가운데 보물, 명승, 천연기념물, 국가민속문화유산 등 국가지정유산이 13건, 각 지자체가 지정해 관리하던 시도지정유산은 23건이다.

특히, 이번 화재는 단순한 재산상의 손실을 넘어,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유산이 소실되는 심각한 문화적 피해를 초래했다.

경북 의성의 천년 고찰 ‘고운사’는 대표적인 피해 사례다. 이곳에 보물로 지정된 ‘연수전’과 ‘가운루’는 화마에 의해 전소되었고, ‘석조여래좌상’은 받침대인 대좌를 제때 옮기지 못해 훼손됐다.

목재로 된 고택과 전통 건축물들도 불길을 피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인간의 손으로 수백 년에 걸쳐 지켜온 유산이 단 며칠 사이에 사라진 것이다.

명승지로 지정된 경북 안동시의 ‘개호송 숲’ 역시 큰 피해를 입었다.

숲 일부는 검게 그을렸고, 백운정을 포함한 자연유산은 현재 수목 치료업체의 손길로 세척 작업이 한창이다.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이 함께 불에 탄 이번 피해는 복구의 복잡성과 긴급성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내년부터 본격적인 복구 작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올해 안에는 부재 수습, 긴급 보존 처리, 복구 설계 등 시급한 사항들을 우선 처리한 뒤, 순차적으로 유산을 원형에 가깝게 되살리는 작업에 나선다.

피해 규모와 훼손된 유산의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복구 우선순위도 정할 예정이다.

복구 재원은 국비와 지방비 외에도 민간의 온정으로 채워지고 있다.

대중음악 기획사 하이브가 기부한 10억 원, 복권기금 등도 복구 예산에 포함됐다.

정부와 민간이 함께 나서는 유산 복구는 단순한 구조물의 재건을 넘어, 역사와 문화의 복원을 목표로 한다.

산불을 피해 긴급 대피시킨 문화재도 있다. 국보와 보물 등 총 1,556점에 달하는 19건의 문화유산은 안전을 위해 인근 박물관 및 문화시설로 옮겨졌으며, 향후 협의를 통해 원래 보관처로 되돌아갈 예정이다. 이 과정 또한 섬세한 관리와 전문적인 조율이 필요하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산불로 피해를 본 국가유산이 본래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의 발언은 단순한 복구를 넘어,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계승하겠다는 국가적 의지를 담고 있다.

이번 산불은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에 대한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 동시에, 우리 문화의 뿌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잿더미 속에서 다시 피어날 천년의 시간, 그 복원의 여정이 이제 막 시작됐다.

[힐링경제=차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