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에서 현금 사용은 매년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3년마다 실시하는 '경제주체별 현금 사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가구당 월평균 현금 지출액은 51만 원으로, 2018년(64만 원) 대비 25.4% 줄어들었다.
전체 지출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율도 2015년 38.8%에서 2021년 21.6%로 급락했다.
반면 신용·체크카드를 이용한 결제 비율은 꾸준히 증가해 같은 기간 37.4%에서 58.3%로 크게 늘었다.
일상적인 거래를 위해 지갑이나 주머니에 넣어 두는 '거래용 현금'은 1인당 평균 8만 2천 원 수준이며, 집이나 사무실 등에 보관하는 '예비용 현금'은 35만 4천 원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응답자의 68.6%는 예비용 현금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기업의 현금 사용도 급감하는 추세다.
2021년 기업의 월평균 현금 지출액은 912만 원으로, 2018년(2,906만 원)보다 무려 68.5% 줄어들었다. 이는 카드와 계좌이체 사용이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현금 없는 사회로의 변화는 분명히 감지된다.
서울시는 2021년부터 일부 시내버스에서 현금 승차를 폐지한 이후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인천, 대전, 제주, 대구, 광주, 세종 등 전국 각지에서도 현금 승차 폐지가 추진 중이다.
또한, 2018년 스타벅스가 도입한 '현금 없는 매장' 운영이 다른 프랜차이즈 및 소매점으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등 키오스크 기반 매장이 증가하면서, 아예 현금 결제가 불가능한 곳도 많아졌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2021년 현금 결제를 거부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가구의 비율은 6.9%에 달했다.
거부 경험자의 64.2%는 카페 등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겪었으며, 자영업 사업장(13.7%), 기업형 슈퍼마켓(5.4%) 등에서도 현금 결제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었다.
현금 인출을 위한 ATM(현금자동입출금기)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국내 15개 은행의 ATM 수는 2019년 말 3만 6,146대에서 2023년 7월 기준 2만 7,076대로 9,070대(25.09%) 감소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현금 사용 감소 추세는 뚜렷하다.
중국은 '알리페이'와 '위챗페이' 같은 간편결제 시스템이 이미 대중화되었으며, 스웨덴에서는 교회 헌금부터 거리에서 판매하는 잡지까지 카드 결제가 가능할 정도로 탈현금화가 진행되었다.
월드페이의 '2024 글로벌 결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세계 현금 거래(POS 결제 기준) 비중은 전체 결제의 16%에 불과하며, 2027년에는 11%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3년 현금 결제가 가장 많은 국가는 나이지리아(55%)였으며, 태국(46%), 일본(41%), 멕시코(38%), 독일(36%)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미국(12%), 영국(10%), 중국(7%), 호주(7%), 노르웨이(4%) 등에서는 현금 결제 비율이 크게 낮았다.
보고서는 2027년이 되면 프랑스, 싱가포르, 한국, 영국, 미국 등 주요 국가에서 현금 거래 비율이 10%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현금 사용이 줄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편리함' 때문이다.
카드 및 간편결제는 보관과 휴대가 용이하고, 빠르게 결제할 수 있으며, 소비 내역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정부 입장에서는 금융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고, 결제 데이터를 활용해 경제정책을 효율적으로 수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모든 거래를 비현금 결제로 진행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도 있다.
자연재해, 전쟁, 대규모 해킹 등의 위기 상황에서 결제 네트워크가 마비되면 국가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2021년 KT 통신망 장애와 2022년 SK C&C 데이터센터 화재 사고 당시 금융거래 시스템이 마비되면서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은 사례가 있다.
또한, 최신 결제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이나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가 금융 소외를 겪을 위험도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일부 주에서는 소매점에서 현금 결제를 거부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도입하고 있으며, 스웨덴과 영국도 ATM 유지 및 현금 사용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 중이다.
현금 없는 사회가 더욱 가속화되는 시대, 우리는 그 편리함과 문제점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현금 없는 사회의 장점도 있지만, 현금은 위기 시 최후의 보루로 사용되는 중요한 결제 수단인 만큼, 현금 감소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힐링경제=윤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