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에서 푸틴 만나는 미국 대표단 [자료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종전안 수용을 강하게 압박하는 가운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핵심 쟁점인 영토 양보에 대해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9일 현지시간 AP통신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 밤 기자들과 왓츠앱 음성 메시지를 통한 질의응답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영토 포기를 요구하고 있다며 명확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영토를 포기하라고 요구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분명히 어떤 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법으로든 국제법으로든 도덕률로든 우크라이나는 무엇도 포기할 권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우크라이나 헌법을 근거로 종전 협상의 일부로서 영토를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거듭 표명해 왔다.

러시아는 현재 점령하지 못한 약 30%의 영토까지 포함해 동부 돈바스 지역 전체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재하는 종전안에도 이 부분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는 이를 거부하고 있으며, 유럽 주요국들도 우크라이나에 영토 양보를 강제로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 대표단은 4일부터 6일까지 사흘간 종전안을 논의했으나, 협상안의 상세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미국 매체 악시오스는 우크라이나 당국자를 인용해 미국 최신안에서 영토 및 자포리자 원전 통제에 관한 조항은 더 강경해졌고, 안전보장에 대한 핵심 의문은 여전히 답변되지 않은 상태라고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미국이 중재하는 종전안을 수용하도록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매체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협상에서 우위에 있는 것은 러시아라며,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의 최신 종전안을 읽으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부관들과 최고위층 인사들도 이 안을 좋아했다고 덧붙였다.

최근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한 행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손을 뗄 수도 있다고 언급한 것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그 말이 완전히 맞지는 않지만 꼭 틀리지도 않았다며 우크라이나 측이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합의를 거부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상황 파악을 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해야 할 것이라며, 그는 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많은 땅을 차지했고, 러시아가 우위에 있으며, 러시아가 더 강한 위치에 있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며 협상에서 러시아가 유리한 위치에 있음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유럽의 태도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유럽이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으며 전쟁만 계속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겨냥해 우크라이나가 오랫동안 선거를 하지 않았으며, 민주주의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더 이상 민주주의가 아닌 지점에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해 5월 5년 임기가 끝났으나 전시 계엄령을 이유로 임기를 연장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젤렌스키 정부에 법적 정당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틀간 유럽을 순방하며 지지 결집에 나선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엑스에 올린 글에서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종전을 위한 구성 요소가 더 발전했으며, 이를 미국 측에 제시할 준비가 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모든 것은 러시아가 유혈사태를 멈추고 전쟁을 재점화하지 않도록 효과적인 조치를 취할 자세가 되어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며, 가까운 미래에 다듬은 문건을 미국에 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 영국 런던에서 영국, 프랑스, 독일 정상과 만났고, 벨기에 브뤼셀로 이동해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이날은 이탈리아 로마로 건너가 레오 14세 교황과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도 회동했다.

36시간에 걸친 유럽 순방 중 전통적인 기자회견을 열 시간이 없었던 젤렌스키 대통령은 기자들과 온라인 메신저로 음성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소통했다.

AP통신은 이런 즉흥적인 소통 방식이 전 세계 정상 사이에서 드문 일이라며, 젤렌스키 대통령이 2022년 러시아 침공 이후 어떤 방식으로든 실시간 소통 의지를 보여왔다고 분석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 침공 직후 키이우가 포위되자 "우리 모두 여기에 있다"는 휴대전화 영상 연설을 내보내 주목받았고, 이후에도 심야 영상 연설을 이어가며 서방 의회나 회의에서 원격 연설을 하는 등 빈번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우선순위로 삼아왔다고 AP통신은 덧붙였다.

미국의 강한 압박과 러시아의 영토 요구 사이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영토 양보 불가 원칙을 고수하며 유럽의 지지를 결집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어, 종전 협상의 향방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힐링경제=김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