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일본 국기 [자료사진=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이 촉발한 중국과 일본 간 갈등이 경제와 문화 분야를 넘어 군사적 긴장 단계로 치달으면서 향후 동북아시아 정세에 미칠 영향이 주목되고 있다.

중국은 발언 철회가 갈등 해소의 출발점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일본 역시 물러서지 않으면서 양국 관계가 향후 전방위 충돌 국면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는 형국이다.

중국은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 직후 일본 여행과 유학 자제령과 함께 일본 영화 상영과 대중문화 공연 취소, 일본산 수산물 수입 중단 등 다각적 제재에 나섰다. 일본 가수가 중국에서 공연 도중 끌려 내려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중국의 강경한 대응 기저에는 대만 문제는 레드라인이라는 전략적 인식이 깔려 있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의 태도는 명확하다"며 "일본이 확실히 반성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한편 다카이치 총리의 잘못된 발언을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압박은 군사적 마찰로 이어졌다. 지난 6일 중국군 항공모함 랴오닝함에서 이륙한 J-15 전투기가 오키나와 인근 공해상에서 일본 항공자위대 F-15 전투기 레이더를 두 차례 조사(照射·겨냥해서 비춤)한 것이다.

일본은 우장하오 주일 중국대사를 초치해 매우 유감스럽다는 뜻을 전하며 강하게 항의하는 한편 중국은 일본 전투기가 먼저 훈련 구역을 침범했다고 맞서고 있다.

이에 중일 간 군사적 의사소통 채널이 제한된 상황에서 사소한 오판이 실제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조치가 단순 보복이 아니라 대만 문제의 레드라인을 명확히 하려는 전략적 메시지라고 분석한다.

먼저 일본을 상대로 핵심 이익인 대만 문제에서 확실한 입장 변화를 끌어내려는 의도다.

중국은 2022년 낸시 펠로시 당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계기로 대만에 거침없는 군사적 압박을 벌였다. 당시 인민해방군 동부전구를 동원해 사실상 침공을 염두에 둔 대만 봉쇄 군사훈련을 벌이면서 대만 상공을 지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기도 했다.

대만 고위 인사의 발언이나 미국과의 군사 협력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대만 봉쇄 훈련과 함께 군용기와 함정을 보내 대만해협 중간선 침범을 상시화하고 있다.

이는 대만 독립 의지를 약화하는 동시에 주변국에 대만 문제 개입은 보복이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안보 불안을 조성해 대만인들이 중국에 적대적인 민주진보당을 기피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일본 내 우경화 움직임을 견제하고 역사 문제의 주도권도 놓치지 않겠다는 계산도 숨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은 세계를 상대로 일본 비판 여론전도 강화하고 있다.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은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국빈 방중에 동행한 장 노엘 바로 외무장관을 만나 "일본이 대만 문제를 빌미로 문제를 일으켜 역사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지원 요청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양국 갈등이 진정되지 않는 가운데 중국의 무력시위가 강도를 더하면서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지난 6일부터 7일께 중국 항공모함 랴오닝 전단이 오키나와 동쪽 섬들 사이를 지나며 이틀 사이 함재기를 100여회 출격시키는 훈련을 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도 지난 4일 중국이 서해 남부를 포함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태평양 등에 이르는 해역에 많게는 해군과 해경 선박 100척을 동원해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대만 총통부 궈야후이 대변인은 중국군 움직임에 대해 "인도·태평양 전체에 위협과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방위성 간부도 본래 중일 갈등 고조를 막는 것이 중요하지만, 현재는 오히려 우발적 충돌 위험이 높아진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반도 주변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 군사력이 한반도 인근 해역으로 확장할 경우 한미일 안보 협력에도 복잡한 파장이 예상된다.

외교가에서는 중일 갈등이 심화할수록 한국의 전략적 공간이 좁아지고, 한중 관계 관리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일본 지지통신은 "중국이 안전보장 면에서 도발할 가능성도 있어 예단할 수 없다"며 중일 간 의사소통이 활발하지 않아 우발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중일 대립이 한층 첨예화하고 있다"며 "레이더 조사를 계기로 한 방위 당국 간 마찰은 중일 대립에 박차를 가할 요인이 될 것"이라고 해설했다.

보수 성향이 강한 다카이치 총리가 발언을 철회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는 관측 속에서 중국 역시 전방위 대응에 나선만큼 물러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중 전략 경쟁이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간 사이 중일 갈등이 동북아의 새로운 긴장 축으로 떠오르면서 한국을 포함한 지역 국가들은 균형 외교와 안보 전략 조정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힐링경제=김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