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자료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 2기 행정부 출범 후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를 상대로 부과한 상호관세의 정당성을 거듭 강조하며 연방대법원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국제경제비상권한법에 입각한 상호관세 부과가 훨씬 더 직접적이고 덜 번거로우며 훨씬 더 빠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모든 요소가 강력하고 단호한 국가 안보 결과를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속도와 힘, 확실성이 지속적이고 승리하는 방식으로 일을 완수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밝혔다.
1977년 제정된 국제경제비상권한법은 외국에서의 상황이 미국 국가안보나 외교정책, 미국 경제에 이례적이고 특별한 위험의 원인이 된다고 판단되면 대통령에게 국가 비상사태 선포로 경제 거래를 통제할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한다.
하지만 관세 부과를 위해 이 법을 발동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이며, 미 연방대법원은 현재 관세 부과에 이 권한을 활용한 것이 위법인지 여부를 심리하고 있다. 1심인 국제무역법원과 2심인 워싱턴 DC 연방순회항소법원은 모두 해당 행위가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워싱턴 DC 연방순회항소법원은 지난 8월 29일 7대 4로 국제경제비상권한법이 관세 또는 과세 권한 등을 포함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면 대통령에게 여러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상당한 권한이 부여되지만, 이 중 어느 것도 관세나 세금 부과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게시글에서 "나는 미국 대통령에게 명시적으로 주어진 권한 덕분에 10개월 동안 8개의 전쟁을 해결했다"며 "만약 이들 나라들이 이 권한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면 크고 명확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1월 5일 미국 대법원에서 진행된 3시간 넘는 변론에서 9명의 대법관 중 최소 6명이 상호관세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 성향 대법관 3명도 정부의 상호관세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트럼프의 관세가 비정상적으로 광범위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국제경제비상권한법이 어떤 나라의 어떤 상품이든 어떤 세율로든 어떤 기간이든 관세 부과 권한에 사용되고 있는데 그 주장의 근거가 부적합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법원이 이 법의 위법성 심리에 들어간 이후 자주 대법원에 유리한 판결을 압박해왔다. 특히 대법원이 자신의 정책에 제동을 걸면 관세를 지렛대 삼아 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과 체결한 무역 합의가 어그러질 뿐 아니라, 관세 덕분에 호황을 누리고 있는 미국 경제가 뒷걸음질 칠 수 있다며 강한 경고음을 발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10일 트루스소셜에 관세 수입과 투자에서 환급해야 할 실제 금액이 2조 달러가 넘을 것이며 그 자체로 국가안보에 재앙이라는 글을 게시했다. 앞서 그는 전날 관세 수입을 활용해 고소득층을 제외한 이들에게 최소 2000달러 배당금을 지급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은 지난 7월 말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에 나서는 대신 상호관세를 15%로 낮추는 것을 골자로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이어 지난 11월 트럼프 대통령 방한을 계기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한국의 대미 투자 패키지 중 2000억 달러를 현금으로 투자하고, 연간 상한을 200억 달러로 설정하는 후속 협상도 마무리했다.
이번 무효 판결은 상호관세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펜타닐 유입을 이유로 중국, 캐나다, 멕시코에 부과한 관세, 중국이 미국에 관세 보복을 했다는 이유로 재차 부과한 관세 등 총 5개 관세에 적용된다. 다만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하여 국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부과된 자동차, 철강, 알루미늄 등 품목별 관세는 국제경제비상권한법과 무관하여 계속 유지될 전망이다.
통상 판결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6개월 이상 걸리지만 이번 소송은 중대한 사안인 만큼 이르면 수주 내에도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대법원이 상호관세를 무력화시키더라도 트럼프 행정부가 품목관세 근거를 규정한 무역확장법 232조와 무역법 301조 등을 이용해 결과적으로 유사한 효과를 보려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힐링경제=김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