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평택항에 수출용 자동차가 세워져 있는 모습 [자료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본격 시행된 이후 미국의 수입이 크게 둔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수출 물량은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의 관세 장벽으로 인해 글로벌 무역 흐름이 미국 이외 지역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무역협회가 29일 발표한 '미 관세 정책 이후 세계 수출 물동량 변화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4월부터 상호관세 등 관세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한 이후 미국의 수입이 눈에 띄게 둔화했다.
미국의 대세계 수입은 올해 1~3월 각각 24.6%, 18.4%, 31.6%의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4월 상호관세 정책이 구체화되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10%의 '보편 관세'가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증가율이 2% 미만으로 급격히 하락했다.
관세가 미국 수입 둔화로 이어지는 현상은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품목별 관세가 부과된 주요 산업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자동차는 4월 3일, 자동차 부품은 5월 3일, 철강·알루미늄은 3월 12일부터 각각 관세가 적용되면서 해당 품목의 미국 수입이 크게 감소했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의 수입 감소와는 대조적으로 전 세계 수출 물량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무역협회가 4월 이후 중국, 캐나다, 멕시코, 독일, 일본, 대만, 베트남, 한국 등 주요 8개 국가와 지역의 무역량을 분석한 결과, 글로벌 수출 물량의 증가세가 확대되는 경향을 나타냈다.
무역협회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미국의 관세 현실화로 주로 미국 외 지역으로 수출 물동량이 상대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해석했다. 즉, 미국 시장 진입이 어려워진 글로벌 수출업체들이 다른 지역으로 수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또한 미국의 관세 조치 발표를 전후로 한 교역량 변화의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했다. 상호관세와 자동차, 철강 등에 대한 미국의 관세 조치 발표 직후 1주일 동안에는 세계 물동량이 25.9% 증가했지만, 실제 관세가 시행된 후 1주일 동안에는 20.8%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의 관세 정책이 글로벌 물동량의 일시적 등락을 촉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역협회는 이러한 물동량 변화가 예고된 미국의 관세를 회피하려는 '밀어내기식 수출'에 따른 결과로 분석했다.
무역협회는 향후 반도체와 의약품을 대상으로 한 관세가 현실화할 경우, 단기적으로 이들 품목의 수출 선수요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기업들이 관세 부과 전에 미리 물량을 확보하려 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무역협회는 기업들에게 "완충 재고를 운용하고, 환율·운임 급등에 대비해 보험·헤지 등 리스크 관리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도 "관세 동향 상시 모니터링 및 핵심 정보의 신속한 제공을 통해 기업의 선제 대응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분석 결과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단순히 미국 수입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글로벌 무역 흐름 자체를 재편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시장에서 배제된 물량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무역 패턴이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힐링경제=윤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