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 [자료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이른바 '대선 개입 의혹'을 내세워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사법권 독립을 둘러싼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정치권의 직접적인 압박으로 대법원장이 물러난 전례는 없어 이번 상황이 주목받고 있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1987년 개헌 이후 대법원장이 중도 퇴진한 사례는 두 차례 있었지만, 모두 사법부 내부의 자정 요구가 결정적으로 작용했으며 정치권 압박에 의해 물러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첫 번째 중도 퇴진 사례는 9대 김용철 대법원장이다. 1988년 총선 결과 사상 초유의 '여소야대' 구도가 형성되면서 제1야당인 평화민주당이 대법원장과 대법관 교체를 요구했다.

노태우 대통령이 전두환 정부 때 임명된 김 대법원장을 유임시키려는 방침을 밝히자, 여야 간에 대법관 자리를 정치적 흥정거리로 삼았다는 사실에 판사들이 동요했다.

이는 정치권력에 종속된 사법부에 대한 개혁과 반성을 요구하는 소장 판사들의 서명으로 전개된 '2차 사법파동'으로 이어져 결국 김 대법원장이 물러나게 되었다.

이후 정기승 대법원장 내정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되는 혼란이 계속된 끝에 새로 지명된 10대 이일규 대법원장이 취임했으나 2년여 만에 정년을 맞아 퇴임했다.

두 번째는 11대 김덕주 대법원장으로, 사법부 개혁을 촉구하는 소장 판사들의 '3차 사법파동' 와중에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공직자 재산 공개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변호사 시절 투기 대상 지역에 9억원어치 부동산을 사들인 사실이 공개되면서 거센 비판을 받고 물러났다.

문민정부 이후 취임한 12대부터 16대까지의 윤관, 최종영, 이용훈, 양승태, 김명수 대법원장은 모두 임기를 채웠다.

대법원장 임기 6년과 대통령 임기 5년이 맞지 않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임 정권에서 임명된 대법원장과의 '불편한 동거'가 반복되면서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지만, 모두 임기를 완료했다.

14대 이용훈 대법원장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임명되어 임기 후반 이명박 정부 및 여당과 갈등을 겪었다.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판사들이 주요 자리에 배치되면서 갈등이 심화되었고, 한나라당은 '좌편향 불공정 사법사태'라고 규정하며 대법원장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이에 이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독립을 굳건히 지키겠다"며 외압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15대 양승태 대법원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명했으나 문재인 정부 때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다.

재판 개입, 판사 성향 파악 등의 의혹으로 여권의 사퇴 압력에 직면했으며,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수사를 받고 헌정사상 검찰에 구속된 첫 대법원장이라는 오욕을 남겼다.

47개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지난해 1심에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고, 11월 2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16대 김명수 대법원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되어 임성근 전 고법 부장판사와의 면담에서 국회 탄핵안 의결 가능성을 언급하며 사표 수리를 반려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국민의힘은 '코드 인사' 문제를 지적하며 압박을 이어갔지만, 여러 논란 속에도 6년 임기를 모두 채웠다.

현재의 조희대 대법원장은 사법연수원을 최상위로 수료한 뒤 재판 업무에 대부분의 경력을 보낸 엘리트 법관이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사법연수원 교수 등을 거쳤으며, 독실한 불교 신자로 일선 판사 시절 외부인과 접촉하지 않는 것으로 내부에서 알려졌다. '원칙론자'로 삼성 에버랜드 2심 재판장 시절 1심보다 더 센 형을 선고한 바 있다.

조 대법원장에 대한 사퇴 압박은 지난 3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중앙지법 재판부의 구속취소 결정과 5월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상고심 파기환송 판결로 민주당 내에서 시작되었다.

최근에는 지난 대선을 앞두고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재명 사건은 대법원에서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압박이 더욱 강화되었다.

이를 이유로 정치권 일각에서는 조 대법원장 탄핵도 거론되기 시작했다.

조국혁신당의 조국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미 조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준비했다고 공개했으며, 여권에서는 관련 의혹의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날 경우 언제든 탄핵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조 대법원장은 전날 관련 의혹에 대해 "한 전 총리와는 물론이고 외부의 누구와도 논의한 바가 전혀 없으며, 거론된 나머지 사람들과도 제기되고 있는 의혹과 같은 대화 또는 만남을 가진 적이 없음을 명백히 밝힌다"며 정면 반박했다.

대법원장이 특정 의혹에 대해 이처럼 공개적으로 반박 입장을 표명한 것은 이례적이다.

법원 내부에서는 사법부 수장을 향한 노골적 사퇴 압박에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며, 법조계에서도 사법부 독립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장판사는 "노골적 삼권분립 침해"라며 "이렇게 나가라고 해서 나간다면 너무나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힐링경제=홍성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