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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사상 처음으로 2%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는 충격적인 전망이 나왔다. 이는 노동과 자본 등 모든 생산요소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더라도 물가 상승 등 경기 과열을 감수하지 않는 한 경제 성장률이 2%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다.

저출산·고령화·혁신 부족 등 구조적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 예상보다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7일 한국은행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양부남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한국 포함 주요국 연도별 국내총생산(GDP)갭 현황' 자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달 발표한 최신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올해 잠재성장률을 1.9%로 추정했다. 이는 작년 12월 분석 당시 2.0%보다 0.1%포인트 떨어진 수치다.

2001년 이후 OECD의 한국 잠재성장률 추정치가 2%를 밑도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의 노동·자본·자원 등 모든 생산요소를 총동원하면서도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생산 수준의 증가율을 의미한다. 이 수치가 2% 아래로 떨어졌다는 것은 한국 경제의 기본적인 성장 능력 자체가 크게 약화됐음을 시사한다.

OECD 보고서에서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11년 3.8%를 기록한 이후 14년 동안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특히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간 2.2% 수준을 유지하다가 올해 갑자기 0.3%포인트나 급락한 것이 주목된다. 이는 단순한 완만한 하락이 아닌 급격한 추락을 의미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주요 선진국들과 비교했을 때도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 7개국(G7)의 올해 잠재성장률을 보면 미국이 2.1%로 가장 높고, 캐나다 1.7%, 이탈리아 1.3%, 영국 1.2%, 프랑스 1.0%, 독일 0.5%, 일본 0.2% 순이다.

한국은 세계 1위 경제 대국인 미국에 2021년 처음 뒤처진(미국 2.4%, 한국 2.3%) 이후 5년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경제 규모가 월등히 크고 성숙한 미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2%를 넘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 너무 빨리 식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 심각한 것은 다른 선진국들이 반등하는 추세를 보이는 가운데 한국만 홀로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1년과 비교해서 캐나다는 1.5%에서 1.7%로, 이탈리아는 1.0%에서 1.3%로, 영국은 0.9%에서 1.2%로 각각 잠재성장률이 반등했다.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한국은 조만간 다른 G7 국가들에도 역전을 허용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잠재성장률 하락은 국내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현실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일 유럽중앙은행(ECB) 포럼 정책토론 과정에서 "10년 전만해도 우리(한국)의 잠재 성장률은 약 3%였지만, 지금은 2%를 꽤 밑돌고 있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이는 잠재성장률 3% 당시와 같은 성장세를 목표로 경기 부양에 나설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이었지만, 한은 내부에서도 이미 잠재성장률이 2%를 하회한다는 분석이 나온 것으로 해석된다.

한은은 작년 12월 발표한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과 향후 전망' 보고서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시 분석한 결과 2024년부터 2026년까지 잠재성장률이 2% 수준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2000년대 초반 5% 안팎에 달했다가 2010년대 연평균 3% 초중반, 2016년부터 2020년까지 2% 중반으로 지속적으로 내려온 상황이다.

문제는 잠재성장률 자체가 낮아진 것에 더해 실질 경제 성장률이 이마저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4월 공개한 보고서에서 한국의 GDP갭률은 2025년 -1.1%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2023년 -0.4% 이후 2024년 -0.3%를 거쳐 3년간 마이너스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격차가 더 커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다.

GDP갭률은 잠재GDP와 비교해 현시점의 실질GDP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실질GDP에서 잠재GDP를 뺀 격차를 잠재GDP로 나눈 백분율 값이다. GDP갭률이 음수라는 것은 해당 기간 실질GDP가 잠재GDP를 밑돈다는 뜻으로, 생산 설비나 노동력 등 생산요소가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OECD의 잠재성장률 하향 조정은 인구 감소, 생산성 하락 등 장기·구조적 요인뿐 아니라 최근 한국 경제 상황에 관한 부정적 시각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조영무 NH금융연구소장은 "잠재성장률 추계 방식이 기관마다 다르지만, 일반적 방법론을 고려하면 최근 한국 경제 부진이 반영된 데이터가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최근 지표를 바탕으로 전망치가 다 바뀌는데, 결국 한국 경제가 당초 예상보다 더 좋지 않다고 본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대책과 관련해서는 근본적인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 소장은 "잠재성장률 하락은 인구 감소 문제에 더해 총요소생산성, 경제의 효율성, 산업의 대외 경쟁력 등이 나빠졌기 때문"이라며 "구조 개혁으로 생산·효율성을 끌어올릴 방법을 찾아야 하고, 인구 감소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고령층의 대규모 퇴직을 방치하지 말고 이들의 노동력을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도 "그만큼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며 "2% 미만의 잠재성장률을 현실로 받아들이면 경기 부양 강도도 그렇게 클 필요가 없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잠재성장률을 고려하지 않고 인위적 경기 부양을 통해 무조건 높은 성장률만 추구할 경우, 성장세가 유지될 수도 없을뿐 아니라 물가 상승, 자산 버블 등의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은행 역시 지난달 10일 '우리 경제의 빠른 기초체력 저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최근 30년간(1994~2024년) 6%포인트나 떨어져 다른 나라와 비교해 하락 속도가 매우 빠르다고 지적했다. 이는 한국 경제가 단기간에 급격한 성장 잠재력 저하를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은은 "기업 투자환경 개선이나 혁신기업 육성을 통한 생산성 향상, 출산율 제고, 외국인력 활용 등을 통해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 잠재성장률 하락세를 완화하거나 전환할 수 있다"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과감한 구조개혁으로 기초체력을 다시 다져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새 정부도 잠재성장률 회복을 핵심 국정 과제로 설정하고 여러 대책을 수립·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미 대선 과정에서 정책공약집을 통해 '잠재성장률 3% 진입'을 목표로 내세웠다. 하지만 현재 1.9%까지 떨어진 잠재성장률을 3%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서는 단순한 경기 부양책을 넘어선 근본적인 경제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저출산·고령화 대응, 혁신 생태계 구축, 생산성 향상을 위한 디지털 전환, 교육·노동시장 개혁 등 다방면에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가 사상 처음으로 2% 미만의 잠재성장률 시대에 접어든 현실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방식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이제는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을 모색하고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힐링경제=윤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