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연합뉴스]
올해 상반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21년 이후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지만, 일부 먹거리 가격이 큰 폭으로 뛰어 서민 가계에 부담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적인 물가 안정세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와 공급 차질로 인한 식품 가격 급등이 새로운 물가 불안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3일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동향과 국가통계포털(KOSIS)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소비자물가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2.1% 상승했다. 이는 상반기 기준으로 2021년 2.0% 이후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물가 안정화 추세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반기 물가상승률 추이를 살펴보면, 2022년 4.6%에서 시작해 2023년 3.9%, 지난해 2.8%로 점차 낮아지는 안정적인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이 점진적으로 완화되고 있으며, 국내 경제의 수요 압력도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물가 안정세와는 대조적으로, 일부 먹거리 물가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서민들의 체감 물가를 크게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수산·축산물 가격 상승이 두드러져 소비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상반기 수산물 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5.1% 상승해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2.1%)을 2배 이상 웃돌았다. 축산물 역시 4.3% 오르며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러한 수산·축산물 가격 급등은 단백질 공급원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균형 잡힌 식단 구성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도 각각 3.7%, 3.1% 상승하며 전체 물가상승률보다 높은 오름폭을 나타냈다. 올해 초부터 가격 인상이 줄줄이 이어진 가공식품의 경우, 원재료비 상승과 인건비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반면 농산물 가격은 작년 동기보다 1.6% 하락해 전체 물가 상승압력을 일정 부분 완화하는 역할을 했다. 이는 주로 지난해 과일값 급등에 따른 기저효과로, 과일 물가가 6.1% 내린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사과, 배, 감귤 등 주요 과일류의 가격 안정화가 농산물 전체 가격 하락을 이끌었다.
품목별 가격 변동을 살펴보면, 일부 품목에서 극심한 가격 급등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주목된다. 무가 올해 상반기 54.0% 뛰어 전체 품목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는 기후변화로 인한 재배 환경 악화와 출하량 감소가 주된 원인으로 분석된다.
보리쌀이 42.0% 급등해 두 번째로 높은 상승률을 보였으며, 오징어채(39.9%), 컴퓨터 수리비(27.9%), 배추(27.0%), 김(25.1%), 찹쌀(23.8%) 순으로 가격 상승폭이 컸다. 이들 품목의 공통점은 기후변화, 공급망 차질, 원재료비 상승 등 구조적 요인에 의한 공급 부족이 가격 급등을 주도했다는 점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배추와 무는 폭우와 기온 등의 영향으로 올해 출하량이 줄어들면서 올 초부터 계속해서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특히 올해 상반기 집중호우와 이상 기온 현상이 채소류 재배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보리의 경우 지난해 재배면적 감소가 가격 급등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농가들이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보리 재배를 기피하면서 공급량이 줄어든 것이다. 오징어채의 경우에는 바다 수온 상승으로 오징어 어획량이 크게 감소한 것이 가격 급등을 불러왔다고 통계청은 분석했다.
가공식품 분야에서도 출고가 인상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면서 소비자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초콜릿이 17.0% 상승해 가공식품 중 가장 높은 오름폭을 나타냈으며, 시리얼(9.9%), 커피(8.8%) 등도 상당한 가격 인상을 기록했다.
이러한 가공식품 가격 상승은 원재료 가격 상승, 인건비 증가, 물류비 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특히 글로벌 원자재 가격 변동성이 가공식품 제조업체들의 원가 부담을 가중시키면서, 이것이 최종 소비자 가격으로 전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제과업계 관계자는 "코코아, 설탕 등 주요 원재료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어 제품 가격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인건비와 물류비 상승도 가격 인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일부 식품 가격 급등에도 불구하고, 내수 부진에 따른 낮은 수요 압력과 유가 하락 등 하방 요인이 상쇄 작용을 하면서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를 밑돌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초 경제정책방향에서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을 1.8%로 전망했다. 하지만 상반기 물가 동향과 하반기 전망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조만간 발표할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 이를 재점검할 예정이다.
한국은행도 지난 5월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1.9%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이는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 완화와 국내 경기 둔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전망치다.
하지만 정책 당국은 전체적인 물가 안정세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의 체감 물가 부담이 여전히 높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물가상승률이 2% 내외 흐름을 지속하고 있지만 여전히 체감 물가가 높은 상황"이라며 "물가 당국 입장에서 경계심을 갖고 계속 모니터링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상반기 물가 동향은 전체적인 물가 안정화 추세 속에서도 특정 부문의 가격 급등이 서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한 농수산물 공급 불안정성과 글로벌 공급망 차질이 상시적인 물가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보다 체계적이고 선제적인 물가 관리 방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가격 변동성에 대응하는 동시에, 중장기적으로는 공급망 안정화와 대체재 확보, 기후변화 적응 농업 기술 개발 등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서민들이 체감하는 물가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맞춤형 지원 정책도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앞으로 하반기 물가 동향은 기후 요인, 글로벌 원자재 가격 변동, 국내 경기 회복 속도 등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전망되며, 정부와 한국은행의 종합적이고 신중한 정책 대응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힐링경제=윤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