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자료사진=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 확대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규제 없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할 경우 자본 유출입 관리 시스템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이에 대해 정부와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 총재는 1일(현지시간)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포럼 정책토론에 참석해 “현재 한국에서 스테이블코인은 매우 뜨거운 이슈”라며 “미국에서 지니어스법(Giancarlo Bill)이 통과되면서 핀테크 업체들이 정부에 비은행권에서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은행은 현재 시중은행들과 함께 예금토큰 사업을 진행 중이지만, 비은행권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자 하는 요구가 급증하고 있다”며 민간의 움직임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이 총재는 스테이블코인의 기술적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블록체인 기반의 신기술이 KYC(고객확인)를 준수하고 이상 거래를 감지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 수준에 도달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내로우 뱅킹(Narrow Banking)’—예금 수취만 하고 대출은 하지 않는 제한적 금융기관—의 문제도 언급하며, 스테이블코인의 지급 기능이 기존 금융시스템을 교란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그는 “이 사안은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권한을 넘어서는 문제이며, 정부 당국과 협의해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며 정부 차원의 정책 조율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총재는 이어진 CNBC 인터뷰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이 통화 정책에 미칠 영향을 재차 강조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면 민간 자금이 유입되고 통화 공급 조절이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지 않으면 달러 스테이블코인에 밀려 통화 주권이 위협받는다는 일부 시각에 대해서는 “그 반대”라며,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존재할 경우 오히려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의 전환을 더 쉽게 만들어 그 사용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이 총재는 변화하는 시장 요구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했다. 그는 “핀테크 등 새로운 시장 주체의 요구가 나타난 상황에서 우리 계획을 일부 재조정할 필요는 있다”고 밝혀, 기존의 은행 중심 예금토큰 실험 위주의 정책 방향에 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는 그간 스테이블코인에 신중했던 이 총재가 정책 조정 필요성을 처음으로 언급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한편, 이 총재는 이날 정책 대담에서 한국의 통화정책 기조와 재정정책 방향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작년 10월 이후 기준금리를 1%포인트 인하했으며, 현재도 금리 인하 사이클에 있다”며 “성장률 전망 등을 고려해 추가 금리 인하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급증하는 가계부채 문제에 우려를 표하며 “금융안정 리스크가 높아졌기 때문에 금리 인하 속도와 시기를 결정하는 데 있어 해당 요소를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재정정책에 대해서는 “일시적인 재정 부양책은 필요하다”며 “이번 추가경정예산 패키지가 올해 성장률을 약 0.2%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실제 효과는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대담 사회자가 ‘가장 우려하는 점’이 무엇인지 묻자, 이 총재는 구조적 변화에 대한 대중의 인식 격차를 꼽았다. 그는 “1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3%에 달했지만 지금은 2%를 밑돌고 있다”며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3% 이상의 성장을 기대하고 있고,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다”고 설명했다.

후임 총재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진지하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한국은행이 단순한 통화정책 기관을 넘어서 일반적인 경제 문제에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답했다.

[힐링경제=윤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