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법관대표회의, 국기에 경례하는 참석자들 [자료사진=연합뉴스]

전국법관대표회의가 30일 임시 회의를 열고 사법부를 둘러싼 신뢰 훼손 논란과 재판 독립 침해 우려 등 주요 현안을 논의했지만, 입장을 모으는 데 실패하며 회의를 마무리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불거진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 대해, 법관 대표들은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모든 안건을 부결시켰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온라인 원격회의 방식으로 임시 회의를 진행했다. 전체 법관대표 126명 중 90명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는 약 2시간 동안 이어졌으며, 공정한 재판, 사법 신뢰, 재판 독립 등과 관련된 7개 안건이 제출됐다. 중복된 내용 등을 조정해 최종적으로 5개의 안건이 표결에 부쳐졌지만, 모두 의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부결됐다.

특히 가장 주목을 받은 안건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에 대해 "법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재판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켜 사법 신뢰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이 안건은 찬성 29명, 반대 56명으로 부결됐다.

또한 "판결에 대한 비판을 넘어 판결을 한 법관에 대한 특검, 탄핵, 청문 절차 등을 진행하는 것은 사법권 독립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임을 천명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한다"는 안건도 찬성 16명, 반대 67명으로 역시 부결됐다. 나머지 세 개 안건도 유사한 이유로 모두 부결 처리됐다.

법관대표회의 관계자는 "이번 대법원 판결 이후 사법 신뢰가 훼손됐다는 점에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는 의견과, 진행 중인 사건의 판결에 대해 사법부가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히는 것은 재판 독립에 대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섰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일부 법관대표는 사법 신뢰 회복을 위한 적극적 의견 개진을 요구했지만, 또 다른 측은 특정 사건을 두고 법관 전체의 견해를 표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임시회의는 지난달 1일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 이후, 해당 판결의 공정성과 정치적 파장 등을 둘러싸고 내부적으로 논란이 커지면서 한 법관대표의 제안으로 소집됐다. 이달 26일 열린 임시 회의에서도 관련 논의가 있었지만, 당시에는 6월 3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입장 채택을 유보한 바 있다.

결국 선거 이후 재개된 이날 회의에서도 의견의 간극을 좁히지 못한 채, 사법부 내 분열된 인식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법 신뢰 회복과 재판 독립 수호라는 두 가치 사이에서 법관들이 내놓을 수 있는 집단적 대응의 한계를 다시 한번 드러낸 셈이다.

[힐링경제=하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