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 [자료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현재 한국 경제의 엄중한 상황을 진단하며 위기 탈출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의 신속한 통과를 강력히 요청했다.
4천700여 자 분량의 연설문에서 '경제'가 24차례나 언급될 정도로 경제 회복에 대한 절박함을 드러낸 이 대통령은, 위기 극복을 넘어 '공정 성장'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26일 국회에서 열린 시정연설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 경제가 직면한 위기 상황을 구체적인 지표와 함께 상세히 제시했다. 그는 "인수위원회도 없이 출범한 정부가 시급하게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한 이유는 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라며 "지금 대한민국은 매우 엄중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제시한 경제 위기의 징후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심각한 수준이었다. "수출 회복이 더딘 가운데 내수마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에 경제성장률을 4분기 연속 0%대에 머물고 심지어 지난 1분기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중산층의 소비 여력은 줄어들고 자영업자의 빚은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이 대통령이 제시한 세부적인 위기 지표들이다. 올해 1분기 정부소비·민간소비·설비투자·건설투자가 모두 역성장을 기록했고, 구직을 단념한 청년 수가 역대 최고 수준에 달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연간 100만명 규모의 자영업자가 폐업하고 있으며, 취약계층의 가계대출 연체율이 급등하고 있다는 현실도 언급했다.
이러한 경제 위기 상황에 대해 이 대통령은 "12·3 불법비상계엄은 가뜩이나 침체된 내수경기에 치명타를 가했다"며 정치적 혼란이 경제에 미친 악영향을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아울러 "미국발 관세 충격부터 최근 이스라엘-이란 전쟁까지 급변하는 국제 정세는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렵다"고 대외적 불안 요인들도 함께 지적하며 복합적인 위기 상황임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현재의 경제 위기 상황을 "경기 회복의 골든 타임"이라고 규정하며 추가경정예산안의 조속한 통과와 집행이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지금은 경제가 다시 뛸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설 때"라며 "경제위기에 정부가 손을 놓고 긴축만을 고집하는 건 무책임한 방관이자 정부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라고 강하게 표현했다.
이러한 표현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확장적 재정정책에 대한 그의 철학을 명확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경제는 타이밍'이라고 한다. 지금이 바로 그 타이밍"이라며 "신속한 추경 편성과 속도감 있는 집행으로 우리 경제, 특히 내수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추경안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상당히 세부적으로 설명했다. 소비진작을 위한 예산 11조 3천억원, 경기 활성화를 위한 투자촉진 예산 3조 9천억원, 소상공인·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민생안정 예산 5조원 등 총 20조원이 넘는 규모의 예산 내역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추경안은 경제위기 가뭄 해소를 위한 마중물이자, 경제 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그 의미를 부여했다.
연설 말미에는 야당 의석을 직접 바라보며 "대한민국 경제 활력을 되찾고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데에 국회가 적극 협조해달라"고 당부했다. 동시에 "우리 국민의힘 의원들께서 어려운 자리에 함께해주신 점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다. 고맙다"며 여당 의원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 대통령의 시정연설에서 또 다른 핵심 키워드는 '공정 성장'이었다. 이는 당면한 경제위기 극복을 넘어서 중장기적인 성장 전략으로 제시된 개념으로, 이 대통령의 경제정책 표어인 '진짜 성장'을 구현하기 위한 3대 전략 중 하나다. 공정 성장은 누구나 성장의 기회를 누리도록 하는 질서를 만들어 혁신을 유도하고, 지대 추구와 갑의 횡포를 막아 '성장의 유인'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는 실용주의 기조 하에서 산업 육성을 위한 기업 친화 정책을 펴는 가운데서도, 부의 불평등 해소라는 전통적인 진보 진영의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정치적 메시지로도 해석된다. 이 대통령은 "요즘처럼 저성장이 지속되면 기회의 문이 좁아지고 경쟁과 갈등이 격화되는 악순환에 빠진다"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고 성장의 기회와 결과를 함께 나누는 '공정 성장'의 문을 열어야 양극화와 불평등을 완화하고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자본시장 정상화에 대한 언급도 주목할 만하다. "자본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회복하면 경제도 살고 기업도 제대로 성장·발전하는 선순환으로 코스피 5,000 시대를 열어젖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자본시장 개혁을 통한 성장 동력 확보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대통령은 공정 성장을 구현하기 위한 사회적 기반으로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사회 질서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예측 가능하고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가 최소한의 합의를 지켜야 한다"며 "공정하게 노력하여 일궈낸 정당한 성공에 박수를 보내는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기득권과 특권, 새치기와 편법으로 움직이는 나라가 아니라 공정의 토대 위에 모두가 질서를 지키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며 사회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특히 "새로운 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은 고통을 수반하지만 검불을 걷어내야 씨를 뿌릴 수 있다"는 표현으로 개혁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감수하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이러한 개혁 의지는 추경안 설명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10조 3천억원 규모의 세입 경정 추진에 대해 "재정 정상화의 시작을 알리겠다"며 "새 정부는 변칙과 편법이 아닌 투명하고 책임 있는 재정 정책을 펼치겠다"고 밝힌 것이 그 예다. 이는 기존 정부의 재정 운용 방식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함께 새로운 접근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대통령은 경제 위기 극복과 공정 성장 구현을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첨단산업에 대한 대대적 투자 계획을 제시했다. 인공지능·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대한 투자,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 바이오산업과 제조업 혁신, 문화산업 육성 등을 언급하며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러한 계획은 단순히 현재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전략적 접근을 보여준다. 특히 인공지능과 반도체 같은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는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시대에 한국이 경쟁우위를 확보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 언급은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안보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전략을 보여준다. 바이오산업과 제조업 혁신, 문화산업 육성 등도 각각 미래 성장 산업으로서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외교·안보 정책을 언급하면서도 이를 경제와 긴밀하게 연결지어 설명했다. "국익중심 실용외교로 통상과 공급망 문제를 비롯한 국제질서 변화에 슬기롭게 대응해야 한다"며 외교 정책의 경제적 실용성을 강조했다.
특히 "평화가 밥이고 평화가 곧 경제다. 평화가 경제 성장을 이끌고, 경제가 다시 평화를 강화하는 선순환을 통해 국민의 일상이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꼭 만들겠다"는 표현은 평화와 경제의 상호 보완적 관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최근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성과 미중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정세 불안 등 국제적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외교·안보 정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동시에 경제적 성과가 다시 국가의 외교적 영향력과 안보 역량을 강화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겠다는 통합적 국정 운영 철학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번 시정연설은 이재명 대통령의 경제 정책 철학과 국정 운영 방향을 명확히 보여주는 첫 공식 발표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4천700여 자의 연설문에서 '경제'가 24차례, '성장'이 12차례, '회복'이 10차례 언급된 것은 경제 회복에 대한 그의 절박함과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민생'이 9차례, '위기'가 7차례, '공정'이 5차례 등장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는 현재의 경제 위기 상황에 대한 인식과 함께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공정성과 민생 안정을 중시하겠다는 가치관을 반영한다. 특히 '공정 성장'이라는 개념을 통해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추구하겠다는 정치적 지향을 명확히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추경안의 신속한 통과를 위해 국회 협조를 당부한 것은 현실적 필요에 기반한 것이지만, 동시에 여야 간 협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야당 의석을 향해 직접 협조를 요청하고 여당 의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것은 국정 운영에서 국회와의 관계를 중시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향후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이번 시정연설에서 제시된 경제 회복과 공정 성장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추경안의 국회 통과 여부와 그 집행 성과가 초기 국정 운영의 성패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으로 예상되며, '공정 성장' 패러다임이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으로 구현될지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힐링경제=홍성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