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자료사진=연합뉴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올해 들어 6개월째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한국은행의 통화완화 정책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역대 최대 수준인 2%포인트의 한미 금리격차가 지속되는 가운데, 한국만 추가 금리인하에 나설 경우 원화 약세와 외국인 자본유출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연준은 17일부터 18일(현지시각)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정책금리 목표 범위를 연 4.25~4.50%로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올해 1월 29일 이후 3월 19일, 5월 7일에 이어 네 번째 연속 동결이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세 차례 연속 인하된 후 올해 들어 완전히 멈춘 상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이 지속적으로 금리인하를 압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준이 신중한 자세를 유지하는 이유는 관세 정책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올해 관세 인상은 가격을 상승시키고 경제활동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높다"며 "관세 효과의 규모나 지속 기간, 소요 기간 모두 매우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연준이 공개한 새로운 점도표에 따르면, 올해 말 기준금리 전망치는 3.9%로 변화가 없었지만 내년 말(3.6%)과 2027년 말(3.4%) 예상치는 기존 전망보다 각각 0.2%포인트, 0.3%포인트 상향 조정됐다. 이는 올해 두 차례 정도의 금리인하가 예상되더라도 내년 이후 통화완화 속도는 더욱 둔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연준의 지속적인 동결로 한미 기준금리 격차는 2.00%포인트라는 역대 최대 수준에서 줄어들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5월 기준금리를 2.75%에서 2.50%로 인하한 후 미국과의 금리차는 더욱 벌어진 상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2일 한은 창립 75주년 기념사에서 "최근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 중반 수준으로 낮아졌지만, 미국의 금리인하 속도 조절에 따라 내외 금리차가 더 커질 수 있고 무역 협상 결과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도 커서 외환시장 변동성이 다시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원화와 같은 비기축통화의 경우 기준금리가 달러권을 크게 밑돌면 외국인 투자자금이 더 높은 수익률을 찾아 유출되면서 통화가치 하락 위험이 커진다. 최근 어렵게 1,300원대에서 안정을 찾은 원/달러 환율이 한미 금리격차 확대로 다시 상승할 경우, 통화정책의 제약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최근 서울 부동산 시장과 가계대출 증가세가 가파른 것도 한은의 고민을 더하고 있다. 이창용 총재는 "기준금리를 과도하게 낮추면 실물경기 회복보다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며 "지난 3월 이후 서울 아파트 가격이 연율 기준으로 약 7% 상승했고,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세도 확대되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서울에서는 2020~2021년 주택가격 급등기를 넘어서는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으며, 5대 은행 가계대출은 이달 들어 불과 12일 사이에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약 2조원이나 증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음달 10일 열릴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금리 동결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기조적 여건은 미국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한은의 딜레마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연준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최근 지표들은 경제 활동이 견고한 속도로 계속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실업률은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노동시장 조건들도 견고하다"고 평가했다.
연준이 올해 미국 GDP 성장률 전망치를 1.7%에서 1.4%로 하향 조정했지만, 이는 여전히 한은의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0.8%)의 거의 두 배에 해당한다. 한국 경제는 건설투자와 민간소비 등 내수 부진으로 이미 1분기에 0.2% 역성장을 기록했으며, 상당수 국내외 기관들은 올해 연간 성장률이 미국 관세정책 등의 영향으로 1%를 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률 격차 때문에 한국은행이 통화정책에서 완전히 손을 놓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창용 총재도 지난달 29일 기준금리 인하 당시 "성장률 전망이 크게 하향 조정됐기 때문에 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진 것은 사실"이라며 "저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가운데 4명이 3개월 내 2.50%보다 낮은 수준으로 인하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금융시장에서도 하반기 추가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여전히 남아있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일반적으로 1%포인트 기준금리를 낮추면 6~12개월 시차를 두고 한국 경제 성장률을 0.1~0.2%포인트 높이는 효과가 있다"며 "따라서 한은이 연내 8월과 11월 두 차례 더 금리 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있지만, 7월 초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나 새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 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 등에 따라 다소 유동적"이라고 분석했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하반기 미국이 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있으니 한은도 하반기 1~2회 더 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한국은행은 다음달 통화정책 결정에서 서울 집값과 가계대출 안정화 정도, 한미 금리격차에 따른 환율 리스크, 그리고 경기 부진의 심각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은 3단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효과 등을 지켜보며 금융시장 안정성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힐링경제=윤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