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연합뉴스]
한국의 필수 생활물가가 다른 주요국에 비해 지나치게 높고, 이러한 구조적 부담이 국내 소비 회복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실제로 식료품과 의류, 주거비 등 일상생활과 직결된 물가가 세계 평균보다 훨씬 비싸고, 이로 인해 서민과 취약계층의 구매력이 뚜렷하게 위축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은 6월 18일 발표한 「최근 생활물가 흐름과 수준 평가」 보고서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 본격화된 2021년부터 2025년 5월까지의 필수재 중심 생활물가 누적 상승률이 19.1%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15.9%)을 3.2%포인트 웃도는 수치다. 팬데믹 기간 중 공급망 붕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상 기후 등 외부 충격에 더해 최근 원자재 가격 및 환율 상승이 시차를 두고 가공식품 가격에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특히 한국의 생활물가는 국제 비교에서도 높은 수준이다. 2023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물가를 100으로 봤을 때, 한국의 식료품은 156, 의류는 161, 주거비는 123으로 나타나 모두 OECD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영국의 경제분석기관 EIU의 조사에서도 한국의 과일, 채소, 육류 가격은 OECD 평균의 1.5배 이상이었다. 일상 소비에 꼭 필요한 항목에서조차 전 세계 주요국 대비 ‘고물가’ 구조가 굳어진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고물가는 특히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의 체감 물가를 크게 끌어올려, 소비 여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보고서는 2021년부터 2025년 1분기까지 우리나라 가계의 실질 구매력 증가율이 연평균 2.2%로, 팬데믹 이전인 2012∼2019년(연 3.4%) 대비 현저히 낮아졌다고 지적했다. 같은 기간 근로소득 등 명목구매력은 일정 부분 늘었지만, 급등한 생활물가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올해 1∼4월 소비 지출을 늘리지 않았다고 답한 국민의 62%가 ‘물가 상승에 따른 구매력 축소’를 이유로 꼽았다. 가계가 느끼는 생활고가 현실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은행은 보고서에서 "생활물가 상승세가 계속되면 국민의 기대인플레이션에 영향을 주고, 이는 중장기적으로 물가 안정 기조를 해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기업 간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규제와 진입장벽을 완화하고, 특정 품목의 원재료 수입선을 다변화해 가격 충격의 연쇄 확산을 완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단기적으로는 할당관세 등을 활용해 농산물 원재료 가격을 안정시키는 방안도 제시했다.
같은 날 발표된 한국은행의 또 다른 보고서인 「가공식품·개인서비스의 비용 측면 물가 상승 압력 평가」에서도 생활물가의 문제점이 다시 확인됐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5월 기준 가공식품 및 개인서비스 부문이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분의 74.9%를 차지했다. 전체 물가 상승의 주요 원인이 생활밀착형 품목에 집중되고 있다는 뜻이다.
보고서는 특히 가공식품과 개인서비스의 생산에 사용되는 국산 중간재 및 수입 원재료 가격이 지속 상승하고 있으며, 이러한 비용 상승은 결국 소비자가격으로 전가된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 과정이 ‘일방향’이라는 점이다. 즉 투입 원가가 오르면 가격은 즉각 오르지만, 반대로 원가가 떨어져도 가격이 내려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이에 대해 “투입 비용 감소가 생산자 가격이나 소비자가격으로 연결되는 탄력성에 대해 통계적으로 유의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며 “생활물가 구조가 매우 비탄력적으로 고착화되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고물가 구조는 한국 가계의 소비심리를 억누르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적 접근이 시급하다는 경고로 풀이된다. 규제 개혁, 수입선 다변화, 공공요금 관리 등 다각적인 대응 없이는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가 점점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힐링경제=윤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