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건설경기, 2008년 금융위기보다 심각 [자료사진=연합뉴스]
건설 경기 침체와 미국 관세 인상에 따른 수출 둔화가 겹치면서, 한국 경제 전반이 정체 상태에 머물고 있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진단이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6월 10일 발표한 ‘6월 경제 동향’ 보고서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건설업이 부진한 가운데, 수출도 둔화하면서 경기 전반이 미약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KDI가 지난 5월 경제 동향에서 ‘경기 둔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데 이어,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비슷한 수준의 부진한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KDI는 “건설투자의 큰 폭 감소가 내수 회복을 제약하고 있다”며 현재 경기 부진의 핵심 원인 중 하나로 건설업 침체를 지목했다.
4월 기준 건설기성은 전년 대비 무려 20.5% 줄며 12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감소 폭 역시 전월(-16.3%)보다 더 확대됐다.
세부적으로는 건축 부문이 전년 대비 23.0% 감소했으며, 주거용과 비주거용 모두 부진했다. 토목 부문도 전년보다 12.6%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전기기계 및 플랜트 분야를 중심으로 두드러졌다.
실제로 최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의 건설경기 침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도 심각하며, 구조적인 복합성을 띠고 있어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다만 건설업에 대한 기대감이 완전히 꺾인 것은 아니다. 일부 선행지표는 개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건설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전망치는 5월 47에서 6월 51로 상승했으며, 건설 수주와 건축 착공 면적도 점진적으로 회복 흐름을 보이고 있다.
수출 부문에서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KDI는 “대미 자동차 수출이 급감하는 등 관세 인상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5월 전체 수출은 전년 대비 1.3% 감소했으며, 일평균 수출 증가율도 1.0%에 그쳤다.
특히 미국(-8.1%), 중국(-8.4%), 중남미(-11.6%) 등 관세 부과 대상 국가들을 중심으로 수출 감소세가 뚜렷했다. 대미 자동차 수출은 무려 32.0% 급감했으며, 이는 최근 미국 정부의 관세율 대폭 인상 조치의 직접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수출 부진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향후 추가적인 무역 갈등이 벌어질 경우 경기 하방 압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처럼 대내외 악재가 겹치는 가운데, 일부 산업에서는 긍정적인 흐름도 감지됐다. 대표적으로 광공업 생산은 4월 기준 전년 대비 4.9% 증가했으며, 특히 반도체 생산은 21.8%나 늘어났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3.8%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고, 재고율은 102.3%로 하락해 생산 여건이 개선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설비투자도 반도체와 운송장비를 중심으로 견조한 흐름을 보였다. 4월 설비투자는 전년 대비 8.4% 증가했으며, 5월 기계류 수입 역시 운송장비(34.1%)와 반도체 장비(26.1%)를 중심으로 늘었다.
이러한 지표는 첨단 산업 분야가 경기 하락 국면 속에서도 일정 부분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정부와 기업의 전략적 집중이 필요한 시점임을 시사한다.
소비는 여전히 위축된 흐름을 이어갔다. 4월 소매 판매는 전년 대비 0.1% 감소했다. 개별소비세 인하의 영향으로 자동차 판매는 16.3% 증가했으나, 가전(-8.7%), 가구(-9.1%), 의복(-7.9%) 등 다른 주요 품목들은 모두 감소했다.
서비스업 생산 역시 침체가 계속됐다. 숙박·음식점업은 2.5%, 교육서비스업은 0.9% 각각 감소해, 소비와 밀접한 업종의 회복세가 더디다는 점을 보여줬다.
그러나 소비자심리지수는 다소 개선돼 5월 기준 101.8로 기준선인 100을 넘어섰다. 이는 국내 정치 불안이 완화되고, 미중 무역 협상에서 일정 수준의 진전이 이루어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고용시장 역시 이 같은 경기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4월 취업자 수는 전년 대비 19만4천 명 증가했지만, 건설업(-15만 명)과 제조업(-12만4천 명)의 고용은 큰 폭으로 줄었다. 이는 실물 경기의 부진이 고용에도 직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KDI는 보고서를 마무리하며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되고, 미중 간 무역 합의 등으로 가계와 기업의 심리지표는 개선되는 모습”이라면서도 “철강과 알루미늄 등에 대한 추가 관세 인상 우려, 그리고 무역 갈등 재점화 가능성 등으로 인해 통상 불확실성은 여전히 높다”고 진단했다.
이번 KDI의 분석은 한국 경제가 여전히 ‘불확실성’이라는 긴 터널 안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건설과 수출이라는 양대 축이 흔들리는 가운데, 반도체 등 일부 첨단 산업이 떠받치고는 있지만, 이는 전체 경제를 견인하기엔 역부족이다. 보다 종합적이고 정교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힐링경제=윤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