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LA에서 불법이민 단속에 항의하는 시위대와 이를 막아선 주방위군 [자료사진=연합뉴스]

미군이 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단속·추방 작전에 대한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로스앤젤레스(LA)에 해병대를 파견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주방위군 파견에 이어 미군의 정예 전투 자산인 해병대까지 시위 진압에 투입하겠다는 것으로, 현지 시위의 격화 또는 진압 사이에서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소속 대권 주자인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사이의 갈등 수위도 더욱 첨예해질 것으로 보인다.

미 북부사령부는 이날 홈페이지에 게시한 성명에서 "주말 동안 경계 상태에 있던 해병대 보병 대대를 활성화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제1 해병사단 산하 제7 해병연대 제2 대대의 해병대원 약 700명이 LA 지역에서 연방 인력과 재산을 보호 중인 '태스크포스 51' 아래 운용되는 타이틀 10 병력과 함께 원활하게 통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부사령부는 태스크포스 51을 미 육군의 북부 비상 지휘소로 소개하면서 "국토 방어 및 국토 안보 작전에서 민간 당국 및 국방부 기관과 협력하기 위해 신속한 동원 능력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태스크포스 51은 타이틀 10 지위의 약 2천100명의 주방위군과 새로 합류하는 700명의 현역 해병대로 구성되어 총 2천800명 규모의 대규모 군사 작전 조직이 되었다.

특히 북부사령부는 "태스크포스 51은 긴장 완화, 군중 통제, 무력 사용 기본 규칙에 대한 훈련을 받았다"고 덧붙여, 시위 대응을 위한 전문적인 준비가 이뤄졌음을 시사했다.

'타이틀 10'은 대통령이 주 정부의 요청이나 동의 없이도 주방위군이나 연방 병력을 해당 주에 배치할 수 있는 권한을 명시한 연방법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캘리포니아주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방 군대를 독단적으로 파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되고 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익명의 국방부 관계자를 인용해 해당 해병대 병력이 이날 오후부터 이동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해병대가 언제 현지에 도착해 작전을 시작할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워싱턴포스트는 또한 "연방 명령을 받는 해병대와 주방위군은 지원 역할을 하되 직접적인 이민 단속이나 법 집행 작전에 참여할 수 없다"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내란법을 발동하면 상황이 바뀔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현재로서는 해병대가 직접적인 체포나 단속 작업에 나서지는 않지만, 내란법이 발동될 경우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LA 시위가 격화되자 시위대를 사실상 폭도로 규정하고 캘리포니아주 방위군 2천여명 배치를 명령해 강경 진압에 나선 바 있다. 이번 해병대 파견은 이러한 강경 기조의 연장선상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북부사령부의 발표 이전 워싱턴DC에서 열린 대미투자 촉진 좌담회에서 LA 시위 진압을 위한 해병대 파견 계획에 대해 "상황을 보겠다"며 직접적인 확답을 피했었다. 하지만 그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는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트럼프는 "'그들이 침을 뱉으면 우리는 때릴 것이다'는 LA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앙 같은 '개빈 뉴스컴'이 불러일으킨 폭동과 관련한 미국 대통령의 성명"이라고 적었다. 여기서 '뉴스컴'은 뉴섬 주지사의 성인 'Newsom'과 쓰레기를 의미하는 'scum'을 합친 조롱 표현이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경 문제 총괄 담당자인 톰 호먼이 "불법이민 단속을 방해"하면 뉴섬 주지사 등을 체포할 수 있다고 경고한 데 대해 질문받자 "내가 톰이라면 그렇게 할 것이다.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는 연방 정부가 주 정부 관료들에 대한 체포까지도 불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발언이다.

뉴섬 주지사는 해병대 파견 소식에 즉각 강력히 반발했다. 그는 엑스(옛 트위터)에 "미국 해병대는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여러 전쟁에서 명예롭게 봉사해왔다"며 "그들은 독재 대통령의 정상이 아닌 환상을 충족시키기 위해 미국 땅에 파견되어 자신의 동포들과 맞서면 안 된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뉴섬 주지사는 또한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해병대 배치를 "도발"로 규정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더 많은 두려움과 분노를 조장하고 분열을 심화시키기 위해 행동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는 연방 정부와 주 정부 간의 갈등이 헌정 차원의 심각한 대립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워싱턴포스트는 해병대 배치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과 뉴섬 주지사 사이의 LA 혼란을 둘러싼 갈등이 크게 격화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도 "법 집행 기관과 행정부의 이민 단속에 반대하는 시위대의 수일간 충돌 후에 잠재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해병대 파견은 여러 측면에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우선 민간 시위에 대한 군사 대응의 적절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미군은 국내 치안 유지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이번 조치로 이러한 원칙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연방 정부와 주 정부 간의 권한 분쟁이 군사적 수단을 동원한 강제력 행사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연방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히 뉴섬 주지사가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주자 중 한 명이라는 점에서 이번 갈등은 정치적 의미도 크다.

해병대 파견으로 LA 지역 시위 상황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군사력의 개입으로 시위가 진압될 가능성이 높아진 반면, 이에 대한 반발로 시위가 더욱 격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태가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 전반에 대한 저항과 맞물려 전국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다. 다른 민주당 소속 주지사들도 연방 정부의 이민 단속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어, 유사한 갈등이 다른 지역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

이번 사태는 또한 2024년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의 강경한 이민 정책이 어떤 정치적 파장을 불러일으킬지를 보여주는 전초전이기도 하다.

뉴섬 주지사와의 대립은 민주당과 공화당 간의 이념적 갈등이 실제 행정 충돌로 이어지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어, 향후 미국 정치 지형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힐링경제=김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