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미국대사관 인근에 설치된 비자신청 안내 표지문 [자료사진=연합뉴스]

미국이 이란 등 12개국 국민에 대한 입국을 전면 금지하는 조치를 9일(현지시간)부터 시행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일 테러 및 공공안전 위험을 이유로 서명한 포고령이 이날부터 본격 발효된 것이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번 조치는 이란, 예멘, 아프가니스탄, 미얀마, 차드, 콩고공화국, 적도기니, 에리트레아, 아이티, 리비아, 소말리아, 수단 등 12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하며, 이들에 대한 신규 비자 발급이 전면 중단된다.

이와 별도로 베네수엘라, 부룬디, 쿠바, 라오스, 시에라리온, 토고, 투르크메니스탄 등 7개국 국민에 대해서는 입국이 부분적으로 제한된다.

이번 조치는 새로 비자를 신청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며, 이미 유효한 비자를 보유한 경우에는 입국이 허용된다.

미 국무부는 “입국 금지 조치는 특정 국가 국민 전체를 막겠다는 것이 아니라, 신규 비자 발급을 보류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조치의 배경으로 “잠재적 테러리스트 유입과 공공안전의 위협, 그리고 비자 만료 후 불법 체류 가능성”을 지목했다. 그는 최근 콜로라도주에서 발생한 유대인을 겨냥한 화염병 테러 사건을 언급하며 “미심사 외국인의 입국이 국가 안보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주장했다. 해당 사건의 용의자는 이집트 출신 불법체류자다.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실패를 교훈 삼아 이번 입국 금지 조치를 보다 정교하게 설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첫 번째 임기였던 2017년, 이란·이라크·시리아 등 무슬림 국가 7곳에 대해 입국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으나, 연방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아 시행이 중단된 바 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는 ‘무슬림 국가 일괄 금지’라는 구도를 피하고, 대신 비자 만료 후 불법 체류율이 높은 국가들을 중심으로 조치를 가다듬었다.

이에 따라 법적 논란을 최소화하면서도 정치적 메시지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해당 국가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이번 조치는 베네수엘라인들에 대한 명백한 낙인찍기”라며 미국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국제사회 일각에서도 인종 차별적 조치라는 비판과 함께 미국 내 이민자 공동체의 불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국경 통제와 이민 규제를 핵심 이슈로 부각시키고 있어, 이번 입국 제한 조치가 본격적인 대선 전략의 일환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는 자국민 보호를 앞세운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의 연장선으로, 보수층 결집을 노린 포석이란 분석이다.

한편 인권단체와 이민자 단체들은 이번 조치에 대해 위헌 소송을 제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향후 법정 다툼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힐링경제=김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