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화영 전 경기도평화부지사 [자료사진=연합뉴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쌍방울 그룹으로부터 억대 뇌물을 수수하고, 800만 달러 규모의 대북송금에 공모한 혐의로 징역 7년 8개월의 실형을 확정받았다.
대법원이 원심 판단을 그대로 유지함에 따라, 이 전 부지사는 실형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번 판결은 이른바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사건에 대한 사법적 판단의 첫 분기점이자, 이재명 대통령의 과거 행적과도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향후 정치권 전반에 파장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대법원 2부(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6월 5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및 외국환거래법,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부지사에게 원심대로 징역 7년 8개월과 벌금 2억5천만 원, 추징금 3억2천595만 원을 선고하며, 사실상 형을 확정했다.
같은 혐의로 함께 기소된 방용철 쌍방울그룹 부회장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원심을 유지해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확정했다.
이화영 전 부지사는 항소심 과정에서 여러 주장을 펼쳤다. 그중에는 핵심 증인인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검찰 수사에 협조하는 대가로 허위 진술을 했다는 주장과 함께, 검사와 김 전 회장 간의 술자리 회유, 진술 유도를 위한 비공식 세미나 개최 등의 의혹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러한 주장을 모두 기각하며 원심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원심 판단은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지 않았고,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았으며, 증거 신빙성 판단이나 증명의 정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이 전 부지사 측의 항변을 전면 부정한 것이다.
이 전 부지사는 경기도 평화부지사로 재직하던 2018년 7월부터 2022년 7월까지, 쌍방울로부터 총 3억3천400만 원의 정치자금과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와 함께 2022년 10월, 대북송금 800만 달러를 쌍방울이 경기도를 대신해 북한에 송금하는 과정에 공모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른바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은 경기도가 북한과 협의한 스마트팜 사업 지원비 500만 달러와,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재명 대통령의 방북 비용 300만 달러를 쌍방울이 대납했다는 의혹에서 출발했다. 수사기관과 1심 재판부는 이 자금이 경기도를 대신해 북한에 직접 지급된 것으로 판단했고, 2심 재판부도 같은 입장을 유지했다.
결과적으로 쌍방울그룹은 공식 외교·행정 루트를 우회해 사실상 ‘경기도의 그림자 지갑’ 역할을 한 셈이며, 이는 외국환거래법을 포함해 중대한 위법 행위로 간주됐다.
이 전 부지사는 1심에서 징역 9년 6개월, 벌금 2억5천만 원, 추징금 3억2천595만 원을 선고받았으며, 2심에서는 징역 7년 8개월로 감형됐지만 핵심 혐의 대부분은 유죄로 인정됐다. 정치자금법 위반에 대해서도 1년 6개월에서 8개월로 다소 형이 줄었을 뿐, 재판부는 이 전 부지사가 직무 관련성 있는 기업으로부터 금품을 반복적으로 수수한 사실을 엄중히 봤다.
재판부는 또한 대북송금 과정에서 이 전 부지사가 경기도의 정책 결정 권한을 동원해 쌍방울을 활용한 정황에 무게를 두었다. 이는 이 사건을 단순한 뇌물수수 사건이 아니라, 대북정책이라는 민감한 외교 영역에 사기업을 개입시킨 ‘정책 왜곡’ 사건으로 판단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번 판결은 단지 이화영 개인의 유죄 확정에 그치지 않는다. 사건의 본질은 쌍방울그룹의 대북송금이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방북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 있으며, 이미 이 대통령도 2023년 6월 이 사건과 관련해 별도로 기소되어 수원지법에서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대통령 당선 이후 재판이 어떻게 진행될 수 있는지에 대한 법적 해석이다. 형사소송법상 대통령은 재임 중 형사소추를 받지 않는 '불소추 특권'이 적용되는데, 당선 전에 기소된 사건까지 포함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개별 재판부의 판단에 달려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이 문제는 향후 헌법적 논쟁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로서는 이재명 대통령의 재판이 당선 직후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인해 정치적·법적 압박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여권은 “대통령 본인의 방북과 대북정책 과정이 사기업 자금에 의존했다면, 국민적 배신”이라며 특검이나 국정조사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화영 전 부지사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 한국 정치의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드러낸다. 지방정부의 대북사업, 정치인의 방북과 기업 자금, 검찰과 피의자 진술의 진실공방까지 얽히고설킨 사건이 이제 하나의 유죄 판결로 매듭지어졌고, 그 다음은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사법적 판단으로 이어질지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한국 정치와 사법이 어떻게 권력과 책임, 진실의 문제를 다뤄야 하는지를 다시금 묻고 있다.
[힐링경제=하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