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연합뉴스]
한국의 경제 체질이 견고함을 드러내는 지표가 또다시 확인됐다. 한국은행이 9일 발표한 국제수지 잠정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상수지가 지난 3월까지 23개월 연속 흑자 기조를 유지하며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속에서도 안정적인 대외 경제 건전성을 과시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3월 경상수지는 91억 4천만 달러(약 12조 8천 463억 원) 흑자를 기록했다. 이는 직전 달인 2월의 71억 8천만 달러보다 약 20억 달러 증가한 수치이며, 전년 동기인 2024년 3월의 69억 9천만 달러와 비교해도 약 22억 달러 늘어난 금액이다.
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2025년 1분기(1~3월) 누적 경상수지 흑자는 192억 6천만 달러에 달하며, 이는 전년 동기의 164억 8천만 달러를 27억 8천만 달러 웃도는 실적이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한국 경제의 대외 거래가 안정적인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3월 상품수지 흑자는 84억 9천만 달러로, 전월(81억 8천만 달러)과 전년 동월(83억 9천만 달러)보다 소폭 개선됐다. 이는 주력 산업인 반도체 수출이 1개월 만에 반등한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
수출은 593억 1천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2% 증가했다. 통관 기준으로 살펴보면 컴퓨터주변기기가 31.7%로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으며, 의약품(17.6%), 반도체(11.6%), 승용차(2.0%) 등의 수출도 호조를 보였다. 반면 석유제품(-28.2%)과 철강제품(-4.9%)은 감소세를 나타냈다.
지역별 수출 실적을 보면 동남아시아와 유럽연합(EU)으로의 수출이 각각 11.0%, 9.8% 증가하며 호조를 보였지만, 중국으로의 수출은 4.2% 감소하며 여전히 회복이 더딘 상황이다. 이는 중국 내 경기 둔화와 자국 산업 보호 정책 강화 등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수입은 508억 2천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3% 증가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에너지 가격 하락으로 인해 석탄(-34.6%), 석유제품(-15.1%), 원유(-9.0%) 등 원자재 수입이 7.5%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수입은 증가세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는 반도체제조장비(85.1%)와 반도체(10.6%) 등 자본재 수입이 14.1% 급증한 데다 승용차(8.8%)와 비내구소비재(3.8%) 등 소비재 수입도 7.1% 늘어난 영향이 크다. 특히 반도체 관련 장비의 수입 급증은 국내 반도체 업계가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서비스수지는 22억 1천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다만 이는 전월(-32억 1천만 달러)이나 전년 동월(-27억 4천만 달러)보다 적자 폭이 크게 축소된 것이다.
특히 여행수지 적자가 7억 2천만 달러로 2월의 14억 5천만 달러보다 크게 줄었다. 이는 내국인의 해외여행 성수기가 마무리되는 한편, 봄철을 맞아 외국인의 한국 방문이 증가하는 계절적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벚꽃 시즌을 맞아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관광객들의 방한이 늘어난 점도 여행수지 적자 축소에 기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본원소득수지는 32억 3천만 달러 흑자로, 2월(26억 2천만 달러)보다 개선됐다. 이는 주로 직접투자 배당소득 수입이 늘어나면서 배당소득 수지가 한 달 사이 16억 8천만 달러에서 26억 달러로 증가한 데 기인한다.
이는 해외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로,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유지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금융계정 순자산(자산-부채)은 3월 중 78억 2천만 달러 증가했다. 직접투자의 경우 내국인의 해외투자가 47억 5천만 달러, 외국인의 국내 투자가 7억 6천만 달러 각각 증가했다. 이는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사업 확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증권투자 부문에서는 내국인의 해외투자가 주식을 중심으로 121억 3천만 달러 증가했으며, 외국인의 국내 투자도 채권 위주로 45억 달러 늘었다.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투자가 활발한 가운데, 외국인들은 상대적으로 안전자산인 한국 채권에 대한 투자를 늘린 것으로 해석된다.
23개월 연속 이어진 경상수지 흑자 행진은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한국 경제의 대외 건전성이 탄탄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최근 세계 경제의 핵심 화두인 인공지능(AI) 열풍으로 반도체 산업이 활기를 되찾고 있는 점은 향후 한국 경제에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된다.
그러나 주요 교역국인 중국과의 무역이 여전히 부진한 점은 향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부분이다. 중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와 미중 갈등의 지속으로 인해 대중국 수출 환경이 예전만큼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수출 다변화와 고부가가치 산업 육성이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또한 서비스수지가 여전히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점도 개선이 필요한 과제다. 관광, 콘텐츠, 지식재산권 등 서비스 부문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서비스수지 적자를 줄여나가는 노력이 요구된다.
종합적으로, 한국 경제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주력 수출 산업의 회복세와 안정적인 대외 건전성을 바탕으로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속에서도 비교적 양호한 성적표를 보여주고 있다. 다만 세계 경제의 변화 흐름에 발맞춰 산업 구조 고도화와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에 더욱 주력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힐링경제=윤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