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연합뉴스]
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6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1,300원대로 내려앉았다.
대만달러, 위안화 등 아시아 주요 통화의 강세 흐름에 연동되면서 원화 가치가 급등한 것이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 간의 관세 협상 기대감도 시장 심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오전 9시 10분 현재 전 거래일 종가(1,405.3원)보다 19.5원 내린 1,385.8원을 기록했다.
장 초반에는 25.3원이나 급락한 1,380.0원에 출발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개장가는 지난해 11월 6일(1,374.0원) 이후 약 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거론되던 시점 이전 수준으로 회귀한 셈이다.
주간 거래 종가 대비 개장가 하락폭은 지난 4월 10일 미국이 상호관세 유예 방침을 밝힌 이후 기록했던 38.1원 하락 이후 가장 큰 폭이다. 이는 올해 들어 나타난 가장 뚜렷한 달러 약세 흐름 중 하나로, 외환시장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원/달러 환율이 주간 거래 중 1,300원대로 하락한 것은 지난해 12월 2일 이후 처음이다.
당시 국내에서는 비상계엄령 가능성 등의 정치적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외환시장 변동성이 극대화된 바 있다.
해외 시장에서도 같은 흐름이 관측됐다.
지난 2일 뉴욕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원/달러 1개월물은 1,374.00원에 최종 호가되며 원화 강세 흐름을 예고했다. 이는 야간 거래 중 최저 1,391.5원까지 내려갔다가 1,401.5원으로 마감된 직후다.
이 같은 흐름의 배경에는 아시아 통화 전반의 강세가 있다. 국내 연휴 기간 동안 위안화와 대만달러 등 주요 통화들이 달러 대비 가치를 높였으며, 특히 대만달러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미국이 대만과의 관세 협상 과정에서 통화 절상 압박을 가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만 정부가 통화 강세를 수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퍼졌고, 이에 따라 달러/대만달러 환율은 3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또한 대만의 주요 생명보험사들이 환위험 회피 차원에서 원화까지 포함한 대규모 환 헤지에 나선 것도 원화 수요를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역외에서 유입되는 원화 수요는 원화 강세를 더욱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미국의 달러 가치도 약세를 보이고 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전날보다 0.33% 하락한 99.463을 기록하며, 기준선인 100 아래로 내려갔다. 이는 전반적인 달러 수요 약화와 미국 금리 인하 기대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정치·외교적 요인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 재무부의 스콧 베선트 장관과 무역대표부(USTR)의 제이미슨 그리어 대표가 이번 주 후반 스위스에서 중국과 공식 회담을 열 계획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미·중 간 관세 전쟁 완화에 대한 기대가 환율 시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외환시장은 미중 무역 긴장 완화가 아시아 통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미리 반영하고 있는 분위기다.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이 같은 흐름이 감지됐다.
같은 시간 서울 증시에서는 코스피가 전일보다 0.66%(16.83포인트) 상승한 2,576.62를 기록한 반면, 코스닥은 소폭 약보합세를 보였다. 이는 외국인 자금이 상대적으로 대형주 위주로 유입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KB국민은행 이민혁 연구원은 “달러 약세에 따라 수출업체들의 추격 네고나 차익실현 물량이 나올 경우 환율이 추가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며 “다만 최근의 급락세에 따른 반발 매수도 존재해, 하단은 일정 부분 지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같은 시각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969.67원으로, 전 거래일(968.3원)보다 소폭 상승했다.
반면 엔/달러 환율은 0.67% 오른 142.906엔을 기록하며, 일본 엔화는 달러 대비 약세를 보였다. 이는 아시아 통화 중에서도 원화와 대만달러가 상대적으로 더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결과적으로 이날 환율 하락은 복합적인 국내외 요인의 합작품이다. 아시아 통화의 동반 강세, 대만 중심의 환 헤지 수요, 미중 관계 개선 기대, 그리고 글로벌 달러 약세 흐름이 맞물리면서 원화 환율은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졌던 1,400원을 뚫고 1,300원대로 하락했다.
향후 환율 추이는 미중 관세 협상의 구체적인 결과,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 방향, 그리고 대만·중국발 환헤지 수요 지속 여부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은 이제 다시 1,300원대 초중반에서의 지지 여부를 시험받게 될 것이다.
[힐링경제=윤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