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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정치의 불확실성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의 고율 관세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로 치솟으며, 한국 경제 전반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2025년 4월 9일 오후 1시 1분을 기점으로 한국산 제품에 대한 미국의 25% 상호관세까지 발효되면서, 국내 주요 수출기업들이 초비상에 걸렸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통상적으로 수출 중심 국가인 한국 경제에는 호재로 작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공식이었다.

달러로 받은 수출 대금을 원화로 환산할 때 수익이 증가하는 구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다르다.

한국 기업들이 해외에 공장을 세우고 자재를 조달하는 비중이 늘어난 데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문제 삼아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 환율 상승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오전 9시 15분 기준 전 거래일보다 13.0원 오른 1,486.3원까지 치솟았다.

이는 금융위기였던 2019년 3월 16일의 1,492.0원 이후 최고치로, 시장에서는 "1,500원 돌파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날 오후부터 미국의 25% 상호관세가 본격적으로 발효되며 한국 기업들은 혼란에 빠졌다.

기업들은 환율 상승으로 기대했던 수익 증대 효과가 관세라는 벽에 가로막히면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전문가들은 이번 환율 급등과 관세 부과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한국 기업들의 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환율이 올라가면 수출 기업에 유리한 건 맞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 않다"며 "수출이 증가하기보다는 이미 수출된 제품에서 원화 환산 이익만 높아지는 상황이어서, 오히려 미국으로부터 가격 인하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들은 환헤징 등 자체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환율 자체보다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더 큰 문제"라며 "한국이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통화스와프 체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태규 한국경제인협회 글로벌리스크팀장도 "환율 상승이 수출에는 유리하고 수입에는 불리하다는 전통적인 공식이 있지만, 지금은 미국이 상호관세를 적용하면서 원화 약세의 긍정적 효과가 상쇄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결국 수출기업들이 얻을 이득보다 손실이 더 클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특히 산업 전반에 걸쳐 '더블 악재'가 충격을 주고 있다. 과거 고환율 수혜 업종으로 꼽혔던 자동차, 반도체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국내 자동차 업계의 매출이 약 4천억 원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액은 347억 4,400만 달러로, 전체 자동차 수출액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환율 상승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처럼 보이지만, 상황은 복잡하다.

이미 미국은 지난 4월 2일부터 한국산 자동차에 25%의 상호관세를 적용하고 있어 환율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환율 상승이 장기화할 경우 원자재와 부품 수입 가격이 상승하고, 내수 시장까지 위축되면서 자동차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반도체와 배터리 업계도 마찬가지다.

단기적으로 환율 상승이 수출 수익에는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원자재 가격 상승과 투자 비용 증가라는 '이중 리스크'가 불가피하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환율이 오르면 수익이 늘기는 하지만, 웨이퍼와 같은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데다 상호관세까지 겹치면 해외 수주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처럼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인 기업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이고,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에 첨단 패키징 공장을 짓고 있다.

환율 상승은 이들 투자 프로젝트의 비용을 급격히 끌어올릴 전망이다.

철강 업계 역시 어려움이 크다.

철광석과 제철용 연료탄 등 주요 원재료를 수입하는 철강 기업들은 원자재 수입비용 증가로 원가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여기에 세계 경기 둔화로 철강 수요가 위축되면서 제품 가격에 원가 상승분을 반영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항공업계도 환율 상승에 따른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항공기의 리스료, 유류비, 정비비 등 대부분의 비용이 달러로 결제되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말 기준 순외화부채가 약 35억 달러에 달하는데, 환율이 10원 상승할 때마다 약 350억 원의 외화평가 손실이 발생한다.

이처럼 환율 급등과 미국의 상호관세라는 이중 악재 속에서 한국 산업계는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과의 외교적 협상과 정책적 대응을 통해 불확실성을 줄이고, 통화스와프와 같은 안전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불확실성이 짙어지는 글로벌 경제 환경 속에서 한국 기업들의 생존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힐링경제=윤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