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 [자료사진=연합뉴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대미 무역흑자국들과의 고율 상호관세 협상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 중에서도 특히 한국과 일본을 우선 협상 대상으로 지정하고 집중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8일(현지시간) 취임 후 처음으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전화 통화를 진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통화에서 "거대하고 지속불가능한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 관세, 조선, 미국산 LNG 대량 구매, 알래스카 가스관 합작 사업, 그리고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대규모 군사적 보호 비용 지불"에 관해 논의했다고 SNS를 통해 밝혔다.
총리실은 양측이 "상호 윈윈하는 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무역균형을 포함한 경제협력 분야에서 건설적인 장관급 협의를 계속해 나가자"고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사실상 양국 간 무역 협상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신호다.
이에 따라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이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USTR)와 협의하기 위해 8일 미국에 도착했다.
한국 정부는 협상을 통해 상호관세와 자동차를 비롯한 품목별 관세 세율을 낮추고, 최소한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은 관세 대우를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4월 2일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표하면서, 한미 FTA로 대미 관세가 사실상 없는 한국에 25%라는 상대적으로 높은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이 발표 이후 한국을 포함한 약 70개국이 미국에 무역장벽 완화와 무역수지 개선 등을 약속하며 협상을 요청하고 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은 CNBC 인터뷰에서 "우리의 교역 파트너 다수가 줄을 서 있다"고 언급하며, 협상 우선순위를 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에 보복관세로 맞대응한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과 즉시 관세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고, 4월 7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관세 문제를 먼저 협의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 한국 정상과 연이어 통화한 것에 대해 "동맹과 먼저 협상한다"는 방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의 가장 긴밀한 동맹이자 교역 파트너 중 일본과 한국 두 국가를 분명히 우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동맹국이라서 우선적 협상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무역적자를 신속하게 줄이기 위해 한국과 일본 같은 대미 무역흑자가 많은 국가를 우선적으로 상대하려는 전략적 판단으로 보인다.
베선트 장관은 일본에 대해 "군사 파트너이자 경제 파트너"라면서도 "상당한 무역 불균형이 있다"고 지적했고, 해싯 위원장도 "수년간 미국에 엄청난 무역적자를 안긴 큰 교역 파트너들에 레이저빔처럼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멕시코, 캐나다와는 불법 이민과 마약 유입을 이유로 이미 지난 2월부터 관세 협상을 진행해왔으며, 유럽연합(EU)은 회원국이 많아 협상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보복 관세를 검토 중인 점을 감안해 후순위로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쉽게 굴복시킬 수 없고 이미 맞대응하고 있어, 다른 주요국 협상을 마친 후 총력 대응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상대적으로 협상이 용이한 한국과 일본에 양보를 압박해 관세를 일부 인하하는 합의를 이끌어낸 뒤, 이를 성과로 홍보하고 다른 국가들에게 '보복보다 협상이 유리하다'는 본보기로 활용하려 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트럼프 행정부 당국자들은 협상을 통한 관세 인하 가능성을 명확히 밝히지는 않으면서도, 협상 여지가 크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시사하며 각국의 협상 참여를 촉구하고 있다.
베선트 장관은 "확실한 제안서를 갖고 협상 테이블에 오면 좋은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그리어 USTR 대표는 "상호주의를 달성하고 무역적자를 줄일 수 있는 더 나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다만, 그리어 대표는 "대통령은 단기에는 면제나 예외를 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고 언급해 당분간은 관세 유지가 불가피함을 시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산 제품 수입 확대를 통한 대미 무역흑자 감소, 조선업 및 LNG 분야 협력 강화 등의 방안으로 미국을 설득하려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덕수 권한대행과의 통화에 대해 "양국 모두를 위한 훌륭한 합의의 윤곽과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고, 해싯 위원장도 "미국 노동자와 농민을 위해 정말 긍정적이었다. 테이블에 정말 많은 양보가 있었다"라고 호평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협상을 서두르기보다는 일본과 EU 등 경쟁국들의 협상 동향을 주시하며 신중하게 접근한다는 방침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수시로 변경될 수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협상을 타결했다가 나중에 다른 나라가 더 유리한 조건을 얻게 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관세를 통한 세수 확대와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 창출이라는 목표가 상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베선트 장관은 "관세 장벽을 세우는 궁극적인 목표는 일자리를 다시 미국으로 가져오는 것"이라면서도 "그 과정에서 상당한 관세를 징수할 것"이라고 설명이다.
그는 "우리가 성공한다면 관세는 녹아내리는 얼음덩이가 될 것"이라며, 기업들이 미국으로 생산시설을 이전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초기에는 관세 수입이 중요하지만, 점차 미국 내 공장과 일자리가 늘면 관세 수입이 감소하는 대신 소득세 수입이 증가할 것이라는 장기적 비전을 제시했다.
[힐링경제=김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