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인문학관, 법정 스님 미공개 편지 공개

영인문학관, 23일부터 기획전…문인·예술가 편지글 100여점 공개

힐링경제 승인 2022.09.21 13:06 의견 0
법정 스님이 소설가 김채원에게 보낸 편지 [자료사진=연합뉴스]

"요즘은 난초를 볼 때마다 '종연생(從緣生) 종연멸(從緣滅)'이라 뇌이곤 합니다. 인연으로 좇아 왔다가 인연 따라 간다는 말로써 스스로 달래고 있소. 집착이 괴로움의 원인임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오."

생전 문인들과 두루 교류하며 깊은 우정을 쌓은 법정스님은 서울 봉은사 다래헌에서 머물던 1970년 8월 소설가 김채원(76)에게 원고지 6장 분량의 자필 편지를 보냈다. 2년 가까이 돌보던 난초가 시들자 물을 주고 분갈이도 해보지만, 상태가 여전히 좋지 않자 난초와 헤어질 때가 다가왔음을 직감하며 "마음이 좀 그렇다"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1975년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전남 순천 송광사 뒷산 불일암에 은거하던 법정 스님은 1976년 11월 프랑스에 가 있는 김채원에게 편지를 썼다. 스님은 "겨울철에 땔감을 준비하고 도장 손질하느라고 손결이 많이 거칠어졌소. 한보름 지나면 김장을 할 것이오. 산에서 혼자 사니 홀가분해서 좋은데 일이 많아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소"라며 근황을 전한다.

법정 스님이 소설가 김채원에게 보낸 편지 [자료사진=연합뉴스]

그간 대중에 공개되지 않았던 법정스님의 편지 일부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

영인문학관(관장 강인숙)은 오는 23일부터 다음 달 28일까지 기획전 '편지글 2022'를 열고 법정스님을 포함한 여러 문인과 예술가들이 주고받은 편지와 메모 등 100여 점을 공개한다고 21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영인문학관이 2003년과 2007년에 이어 15년 만에 여는 세 번째 편지전이다. 영인문학관은 올해 봄부터 여러 작가에게 "내면이 돋보이는 긴 장문 편지를 찾아봐 달라"고 부탁했고, 다수의 편지글을 받아 전시 작품을 추렸다. 대부분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라고 한다.

1930년대를 대표하는 이용악 시인의 월북 전 육필을 볼 수 있는 편지, 황금찬 시인이 1976년 시집 '민들레의 영토' 출간을 축하하면서 이해인 수녀에게 보낸 편지, 소설가 권지예가 여고생이 된 후 중학교 시절 짝사랑한 선생님에게 보냈지만 주소가 잘못된 탓인지 반송된 편지 등도 전시된다.

이 밖에도 마종기 시인과 김영태 시인이 미국과 서울에서 주고받은 편지, 판화가 이성자와 후배 화가 조문자가 서로 응원하고 격려한 편지, 일간지 파리특파원 시절 김성우가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사망하기 두 달 전 그에게서 받은 편지 등도 포함돼 있다.

영인문학관 기획전 포스터 [자료사진=연합뉴스]

강인숙 관장은 "편지는 한 사람이 일인칭으로 쓰는 내면의 풍경화이며, 단 한 사람의 특별한 독자를 위해 쓴 문인들의 편지는 보배롭다"며 "사람이 다른 사람의 내면에 일대일로 다가갈 방법이 있다는 것은 경하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문학과 공예의 제휴도 엿볼 수 있다. 영인문학관은 '박경란 그림전'을 편지와 함께 보여주는 방식을 통해 박경란 작가의 예술 세계와 편지가 어울리는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별도의 개막식은 없다. 다만 24일(정한아 소설가)과 10월 1일(나태주 시인), 10월 15일(박범신 소설가), 10월 22일(이해인 시인) 각각 오후 2시에 '작가와의 만남' 행사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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