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배우 김지미 [자료사진=연합뉴스]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원로 배우 김지미가 미국에서 별세했다. 향년 85세였다.

한국영화인총연합회는 10일 김지미 배우가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다며 이장호 감독이 알려왔다고 밝혔다.

1940년 충남 대덕군에서 태어난 김지미는 본명이 김명자다.

그는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1957년 데뷔해 1990년대까지 작품을 남긴 한국 영화계의 대표 스타 배우로, 출연 작품이 700여 편에 달한다.

김지미는 덕성여고 재학 시절 미국 유학을 계획하던 중 우연히 김기영 감독에게 길거리 캐스팅되면서 17세에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데뷔하는 과정에서 얻은 예명 김지미가 배우로서의 이름이 되었다.

성공적인 데뷔로 주목받은 그는 이듬해 멜로드라마 '별아 내 가슴에'로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 '장희빈' 등에 출연하며 1960년대까지 이어지는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 시기를 수놓았다.

김지미의 세련되고 도시적인 이미지는 당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살인 사건들의 중심에 선 묘령의 여인을 연기한 '불나비'는 그의 팜므파탈 매력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거론된다.

김지미는 연기자로서 넓은 지평을 보여줬다. 김수용, 임권택, 김기영 등 거장들과의 작업은 연기의 한계를 시험하는 장이었다.

'토지'에서 대지주 가문을 이끌어가는 안주인 역을 맡아 파나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과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영화 '만추'의 리메이크작 '육체의 약속'에서 사랑에 빠진 죄수 역할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연기력을 입증했다.

이산가족 아들을 찾아 나선 중년 여성을 연기한 '길소뜸'은 김지미 연기력의 백미로 꼽힌다.

후시 녹음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로 완숙한 연기를 보여준 그는 이 영화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김지미는 제작자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85년 제작사 지미필름을 설립한 뒤 '티켓'을 비롯해 7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명자 아끼꼬 쏘냐'까지 그가 출연한 작품은 700여 편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영화 행정가로서의 면모도 보였다.

1995년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1998년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1999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등을 맡으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영화계 여장부로 꼽히는 김지미는 독보적인 카리스마와 강인한 모습으로 한국 영화계를 지켜왔다.

흥행 멜로드라마를 함께 만들어간 홍성기 감독, 당대 인기 배우 최무룡, 가수 나훈아 등과의 결혼 및 이혼은 스타로서 화려했던 삶의 일면을 보여준다.

그는 할리우드 스타 엘리자베스 테일러에 비견되기도 했다.

2010년 영화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당시 붙은 '화려한 여배우'라는 타이틀은 그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김지미는 2019년 참석한 부산국제영화제 오픈토크에서 배우로서, 인생으로서 종착역에 가까워져 가는 시간이 되어간다며, 자신에게 사랑을 주신 여러분 가슴 속에 영원히 자신을 간직해주시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한국영화인총연합회는 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을 준비 중이다.

17세 길거리 캐스팅으로 시작해 7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족적을 남긴 김지미.

그의 별세로 한국 영화계는 영원히 기억될 전설 하나를 보내게 되었다.

[힐링경제=차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