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좌측)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우측) [자료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해 최근 제안한 28개 항목의 평화구상안을 누가 작성했는지를 둘러싸고 미국 내에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미 연방 상원의원들이 "평화안이 러시아와의 광범위한 협의 끝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한 반면, 미국 정부는 이를 "명백한 허위"라고 강력히 반박하며 진실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23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메인주를 지역구로 하는 무소속 앵거스 킹 연방 상원의원은 이날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평화구상안에 대해 "러시아와 광범위한 협의 끝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킹 의원은 전날 공화당 마이크 라운즈 상원의원과 함께 '평화구상의 작성 주체는 미국이 아니라 러시아'라고 주장한 인물이다. 그는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상원의원들과의 통화에서 이 같은 사실을 공개했다고 주장했다.
킹 의원은 평화안이 러시아의 불법적인 침략에 보상을 주는 내용이 담겼다면서 '러시아 작성설'을 고수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양보하고 군대 규모를 감축하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포기하는 내용 등이 러시아에 지나치게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는 연방 상원의원들의 주장에 대해 즉각 반박에 나섰다. 국무부는 대변인을 통해 "평화안은 미국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쪽의 의견을 반영해 작성한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작성설'을 언급한 것으로 지목된 루비오 국무장관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평화구상은 미국이 작성한 것"이라며 "러시아의 의견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의 의견도 반영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루비오 장관은 2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대표단과의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거의 3주 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에 공유하고 검토받아 양측 의견을 반영한 기초 문서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평화안의 작성 주체를 둘러싼 논란은 언어학적 분석으로까지 확대됐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키스 켈로그 우크라이나 특사의 딸인 미건 몹스 미국안전안보연구소(CASS) 소장은 평화안에 러시아 정부 특유의 표현이 담겼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영어로 작성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몹스 소장은 러시아어로 작성된 평화안이 영어로 번역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하며, 문서의 표현 방식과 어휘 선택이 러시아 측 문서의 특징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국제사회에서도 평화구상안의 작성 주체에 대한 의혹의 눈길이 적지 않은 분위기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이날 소셜미디어에 우크라이나 평화구상안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도 "그러나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이 계획의 작성자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고 신중한 입장을 표명했다.
유럽 국가들은 이번 평화안이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채 미국과 러시아 간에 비밀리에 논의됐다는 점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평화안은 우크라이나 평화체제, 안전보장, 유럽의 안보, 미국·러시아·우크라이나 간의 미래 관계 구상 등 4개 범주의 총 28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더욱 주목할 점은 백악관 내부에서조차 평화구상안의 구체적인 내용과 진행 과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는 것이다.
익명의 미국 정부 관계자는 워싱턴포스트(WP)에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평화구상의 구체적인 내용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협상을 성사시켜 보겠다'고 보고하면 '좋아, 할 수 있는 게 뭔지 알아봐'라고 말한다"며 "그게 그가 관여하는 세부 사항의 수준"이라고 내부 상황을 소개했다.
그는 "오늘 하루 종일 완전히 혼란스러웠다"며 "백악관 내 서로 다른 부서조차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당혹스러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논란이 확산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이 평화구상안이 "최종 제안이 아니다"라고 밝히며 수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트럼프는 "우리는 평화를 이루고 싶고, 오래 전에 이뤄졌어야 한다"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절대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추수감사절인 27일까지 이 평화안을 수용할 것을 촉구하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에 대해 "존엄성, 핵심 동맹국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거나 어려운 조항 28개를 받아들이거나 혹독한 겨울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평화구상안의 작성 주체를 둘러싼 논란은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힐링경제=김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