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블랜드 마무리 투수 이매뉴얼 클라세 [자료사진=연합뉴스]

미국 프로 스포츠계가 대규모 도박 스캔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프로농구(NBA)에 이어 프로야구(MLB)에서도 선수들이 경기를 조작하고 도박 조직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면서 미국 스포츠의 공정성과 신뢰도에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

미 연방법원은 9일(현지시간)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 가디언스 소속 마무리 투수 이매뉴얼 클라세(27)와 선발 투수 루이스 오티스(26)에 대한 공소장을 공개했다. 연방 검찰은 두 선수를 뇌물 수수, 경기 조작 공모, 전신사기, 자금세탁 등 4가지 혐의로 기소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클라세와 오티스는 2023년부터 2025년까지 경기 중 고의로 투구 속도를 낮추거나 스트라이크존에서 크게 벗어난 공을 던지는 방식으로 베팅 결과를 조작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의 스포츠 도박 사이트인 플레이북 등에서는 투수의 투구 속도나 볼·스트라이크 개수 등 세부적인 경기 상황에 돈을 거는 '프롭 베팅(Prop Betting)' 유형이 있는데, 이들은 이를 악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오티스는 올해 6월 15일과 27일 선발 등판 경기에서 사전에 공모한 도박꾼들에게 고의로 볼을 던지기로 약속하고 1만2000달러(약 1680만원)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클라세도 오티스의 투구 조작을 주선한 대가로 같은 금액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연방 당국은 도박꾼들이 이 과정에서 최소 6만 달러(약 8400만원)를 따냈으며, 클라세의 조작 투구로 베터들이 얻은 수익만 40만 달러(약 5억6000만원) 이상이라고 밝혔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인 두 선수는 미 연방수사국(FBI)의 추적을 받았으며, FBI는 9일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에서 오티스를 체포했다. 오티스는 10일 보스턴 연방법원에 출석할 예정이다. 클라세의 신병은 아직 확보되지 않은 상태다.

MLB 사무국은 두 선수의 비정상적인 경기 패턴과 이들이 등판한 경기에서 비정상적으로 높은 베팅 규모가 발생한 사실을 포착했다. MLB는 지난 7월 이미 클라세와 오티스에게 일시적 출장 정지 처분을 내리는 한편 수사 당국에 수사를 의뢰한 바 있다. 두 선수는 현재까지 무급 휴가 상태로 남아 있다.

이번 MLB 스캔들은 NBA에서 발생한 대규모 도박 사건에 이어 터져 나왔다. 지난달 10월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촌시 빌럽스 감독,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등에서 선수와 코치로 활동했던 데이먼 존스, 마이애미 히트의 현역 선수인 테리 로지어 등 전·현직 NBA 관계자들이 FBI에 체포됐다.

빌럽스 감독은 17년간 NBA 선수로 활약하며 5차례 올스타에 선정됐고 2024년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전설적인 선수다. 이들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선수 부상이나 결장 등 NBA 내부 정보를 활용해 불법 스포츠 베팅을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로지어는 부상을 위장해 도박 시장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프로 스포츠에 대한 사기 도박 우려가 오랫동안 상존해왔다. 그러나 2018년 5월 연방대법원이 스포츠 베팅을 금지했던 연방법(PASPA)을 위헌으로 판단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각 주 정부가 스포츠 베팅 합법화 권한을 갖게 되면서 38개 주가 어떤 형태로든 스포츠 베팅을 합법화했고, 온라인에서 경기나 선수 성적 등에 관련한 베팅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AP 통신은 스포츠 베팅 합법화 이후 미국의 베팅 시장 규모가 급성장했지만, 이와 함께 경기 조작과 사기 도박 사건도 증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22년 12월 기준 미국의 스포츠 베팅액은 76조원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NBA와 MLB가 연이어 도박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미국 프로 스포츠의 명성과 신뢰도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특히 투구 속도나 개별 투구 결과까지 베팅 대상이 되는 '프롭 베팅'의 확산이 선수들의 경기 조작을 유도하는 구조적 문제로 지적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프롭 베팅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미국 스포츠계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선수들에 대한 도박 관련 교육 강화와 베팅 모니터링 시스템 개선 등 재발 방지책 마련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힐링경제=김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