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허민 국가유산청장 [자료사진=연합뉴스]

유네스코 세계유산 1호 종묘를 둘러싼 개발 논란이 격화되고 있다.

서울시의 세운상가 재개발 사업으로 종묘 앞에 고층 건물이 들어설 수 있게 되자,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유산청이 7일 강력 반발하며 가능한 모든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7일 허민 국가유산청장과 함께 서울 종묘 정전을 방문해 "장관으로서 취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두 수장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 참석 중 시간을 내어 종묘를 찾아 서울시의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 계획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최 장관은 종묘 정전 일대를 둘러본 후 "종묘는 조선 왕실의 위패가 모셔진 신성한 유산이며, 우리나라 유네스코 세계유산 1호의 상징적 가치를 가진 곳"이라며 "이런 가치가 훼손될 수 있는 현 상황이 매우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최 장관은 최근 문화유산을 둘러싼 논란들을 강하게 비판하며 "권력을 가졌다고 마치 자기 안방처럼 마구 드나들며 어좌에 앉고 차담회를 열고, 소중한 문화유산이 처참하게 능욕당한 지가 바로 엊그제"라고 말했다.

종묘 맞은편 개발에 대해서는 "권한을 조금 가졌다고 해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겠다는 서울시의 발상과 입장을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이것이 바로 1960~70년대식 마구잡이 난개발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문화강국의 자부심이 무너지는 이런 계획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장관은 허민 청장에게 "법령의 제정, 개정을 포함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신속히 검토해서 보고해주시기를 바란다"고 지시했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대체 불가한 가치를 지닌 종묘가 지금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며 "위험을 자초한 것은 유산을 보호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서울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종묘 앞에 세워질 건물은 서울 안에 있는 조선 왕실 유산이 수백 년간 유지해온 역사문화경관과 종합적 가치를 직접적으로 위협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허 청장은 이 사안이 "높이나 그늘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초고층 건물들이 세계유산 종묘를 에워싼 채 발밑에 두고 내려다보는 구도를 상상해보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방법을 강구해 세계유산 지위를 지키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세계유산 표석 앞에서 유네스코가 '세계유산 지역 내 경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근 지역에서의 고층 건물 건축 허가는 없을 것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을 명시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가유산청은 서울시의 고시 내용과 현재 상황을 유네스코 측과도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날 최 장관과 허 청장이 방문한 정전 일대에는 세운4구역 재개발사업 주민대표회의 관계자들이 찾아와 항의했다. 이들은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라', '주민 피눈물 누가 닦아주냐'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부당한 규제로 인해 수천억 원의 재산적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논란은 지난 6일 대법원이 개발 규제를 완화한 서울시 조례 개정이 법령 우위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서 촉발됐다. 대법원은 문화유산법 해석상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바깥에 대해서까지 국가유산청과 협의해 조례를 정해야 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종묘는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대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국가 사당으로, 1995년 12월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과 함께 한국 최초로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올해 4월 서울시에 재정비사업이 종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전체 계획에 대한 유산영향평가(HIA)를 받으라고 요청했으나, 서울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유산청은 세운4구역 높이 변경과 관련한 구체적인 대응책을 검토 중이다.

[힐링경제=차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