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 [자료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주한미군 감축 등 한국 안보의 불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번 기회가 한국의 자주 국방 역량을 강화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동맹국이 스스로 군사 역량을 키워 자체 안보를 책임지게 하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와, 무역과 안보를 연계해 협상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 지향적 외교 스타일이 한국 현 정부의 자주국방 강화 방침과 맞물리고 있기 때문이다.
원자력 추진 잠수함 확보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 오랜 숙원 사업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다음 날인 지난 10월 30일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한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원자력 에너지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원자력 추진 잠수함은 현재 한국이 운영 중인 디젤 잠수함보다 훨씬 오랜 기간 은밀하게 잠항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역대 한국 정부가 꾸준히 원했던 무기 체계지만, 개발에 필수적인 소형 원자로와 농축 우라늄 연료를 확보하려면 미국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했다.
미국은 전임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2021년 오커스(AUKUS) 협정을 통해 호주에 재래식으로 무장한 원자력 추진 잠수함 기술을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러한 협력을 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로 확대하는 데는 부정적인 입장을 유지해왔다.
원자력 잠수함 기술은 미국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핵심 기술에 속한다. 더욱이 미국의 전통적인 핵 비확산 원칙을 고려하면 동의를 얻어내기가 매우 어려운 사안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게시글에서 한국과의 무역 합의와 동맹관계에 만족을 표하며 이를 단번에 승인했다.
정부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이 요청해온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확대하는 방향으로도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는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이 목적이 아니며, 원자력 발전에 필요한 핵연료의 안정적 확보와 처분을 통해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차원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우라늄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 기술은 안보적 측면에서 잠재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연합사령부의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군에서 한국군으로 이양하는 문제에서도 이전 행정부보다 훨씬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은 지난 10월 29일 기내 간담회에서 이재명 정부의 전작권 전환 추진에 대해 "훌륭한 일"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미 양국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11월 전작권을 2012년 4월까지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때 2015년 12월로 연기됐고,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에는 조건 충족 시 전환하기로 다시 합의했다.
전작권 전환에 필요한 한국의 군사적 능력 확보 등 3가지 조건을 먼저 충족해야 전환한다는 합의 때문에 지금까지 실현되지 못했다. 이재명 정부는 5년 임기 내 전작권 환수를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전작권 전환에 적극적인 배경에는 동맹국이 자국 안보를 미국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명확한 기조가 깔려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 등 첨단 군사력 개발을 용인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동맹 방어에 자원을 투입하고 싶지 않지만 인도·태평양 지역에 걸린 국익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동맹국의 군사 역량을 키워 중국과 북한 등의 위협을 견제하는 데 동맹국이 더 큰 역할을 담당하게 하겠다는 전략이다.
헤그세스 장관은 "우리 동맹의 역량이 늘어날수록 좋다"며 "한국은 우리 병력에 훌륭한 주둔국일 뿐 아니라 안보를 주도하고 싶어 하며 그럴 의지를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원자력 잠수함은 광활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갈수록 강해지는 중국 해군력에 대항하는 데 필수적인 전력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미국의 방위산업계는 미군에 필요한 최소 수량인 연간 2척의 버지니아급 원자력 잠수함도 제때 인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은 약 70척으로 중국보다 5배 이상 많다. 그러나 중국이 빠른 속도로 따라잡고 있으며, 중국은 더 조용하고 빠르며 첨단 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디젤 추진 잠수함도 함께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에서 승인한 원자력 잠수함 건조와 핵연료 재처리 등의 정책이 역대 미국 행정부의 핵 비확산 기조와 상충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정권을 초월한 정책의 연속성을 100퍼센트 장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특히 호주의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원자력 잠수함은 해결해야 할 규제적·기술적 문제가 많아 미국 대통령의 4년 임기 내에 완료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차기 미국 정권의 지속적인 지지가 필요해 보이는 이유다.
미국은 전임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2021년 영국, 호주와 함께 오커스 안보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의 핵심은 호주에 재래식으로 무장한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2030년대 초부터 버지니아급 핵잠수함 최대 5척을 호주에 판매하기로 했다. 호주와 영국은 미국의 기술을 도입한 핵잠수함을 공동 개발해 각자 자국 조선소에서 건조한 뒤, 2030년대 후반 영국에, 2040년대 초반 호주에 첫 잠수함을 인도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그러나 핵잠수함 기술 이전에 필요한 미국 내 규제 정비 등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미국이 자국에 필요한 핵잠수함조차 제때 건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목표한 시기를 맞출 수 있겠냐는 우려가 계속 제기돼왔다.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가 어떻게 진행될지 아직 공개된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하지만 오커스 사례를 보면 그 실행까지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힐링경제=김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