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자료사진=연합뉴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9월에 이어 다시 기준금리를 낮추면서 한국과 미국의 금리 격차가 축소됐지만, 한국은행은 다음 달에도 동반 인하에 나서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시장의 불안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시장과 전문가들은 11월 27일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앞두고 서울 집값 오름세가 뚜렷하게 진정되지 않을 경우, 금리 인하 시점이 내년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하고 있다.

연준은 28일부터 29일까지 현지 시각으로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 정례회의에서 정책금리 목표 범위를 연 3.75%에서 4.00%로 0.25%포인트 인하했다.

미국의 정책금리는 지난해 9월 0.50%포인트, 11월과 12월 각각 0.25%포인트씩 연달아 낮아진 뒤 계속 동결돼 있다가 올해 9월과 10월 연속 인하가 단행된 것이다.

연준은 의결문에서 인하 배경으로 고용 증가세 둔화와 실업률 상승 등을 언급했다. 양적긴축을 12월 1일 종료한다고 예고한 것도 통화 완화적 조치에 해당한다. 그러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12월 추가 인하는 기정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면서, 시장에서는 이번 인하를 매파적 성격을 띤 조치로 평가하고 있다.

미국의 잇단 금리 인하로 내외 금리 격차와 환율 측면에서는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여력이 일단 커진 상황이다. 지난 5월 이후 역대 최대 폭인 2.00%포인트까지 벌어졌던 한미 기준금리 격차가 1.50%포인트로 축소되면서, 자본 유출이나 원달러 환율 상승 압박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원론적으로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가 아닌 원화 입장에서 기준금리가 미국을 크게 밑돌면,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떨어질 위험이 커진다.

지난 29일 한미 관세 협상 타결도 향후 환율 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이날 새벽 2시 환율은 전날 서울 외환시장 종가보다 16.70원 낮은 1421.00원까지 급락했다. 지난 20일 이후 7거래일 만에 1430원대에서 1420원대로 내려앉은 것이다.

환율이 하락할수록 한국은행 입장에서는 그만큼 금리 인하를 주저할 요인이 사라지는 셈이다.

그러나 관세 협상 불확실성 해소와 미국 기준금리 인하 등으로 환율이 떨어지더라도, 서울 집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을 경우 11월에도 한국은행은 쉽게 기준금리를 낮추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한국은행 입장에서는 유동성을 더 늘려 부동산 시장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실제로 23일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이 총재를 비롯한 금융통화위원회는 3연속 동결을 선택했다.

이 총재는 동결 직후 기자 간담회에서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우리나라 소득 수준과 사회적 안정을 고려할 때 너무 높은 수준"이라며 "부동산 가격 상승이 우리 경제 성장률을 갉아먹고 불평등을 심화한다"고 강조하며 집값 안정 필요성을 역설했다.

금융통화위원회도 의결문에서 6월 27일과 10월 15일 발표된 부동산 대책의 수도권 주택시장 및 가계부채 영향, 환율 변동성 등 금융안정 상황을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며, 주요 동결 배경으로 부동산을 꼽았다.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다. KB부동산이 25일 발표한 10월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월보다 1.46% 상승했다. 이는 올해 들어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한국은행의 소비자동향조사에서도 10월 주택가격전망지수가 122로 9월보다 10포인트 올라 4년 만에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이는 1년 뒤 집값 상승을 예상한 응답자가 그만큼 늘었다는 의미다.

더구나 지난 28일 발표된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 성장률 속보치가 한국은행의 당초 예상보다 0.1%포인트 높은 1.2%로 확인되고 올해 연간 1%대 성장 가능성이 커지면서, 경기 부양을 위한 기준금리 인하 명분도 줄어든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부동산, 가계대출, 환율, 경기 등에 큰 변화가 없다면 11월 금리 인하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안예하 키움증권 선임연구원은 "한국은행이 연내 기준금리를 동결한 뒤 내년 2월이나 1분기 중 한 차례 더 낮추고 인하 사이클을 종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다음 달 한국은행이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1.8%로 상향 조정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경우 잠재성장률을 회복한다는 의미인 만큼 11월 회의에서 인하 사이클 종료를 시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미국의 금리 인하로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여력이 확대됐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시장 안정과 금융 안정성 확보가 더 우선시되면서 당분간 기준금리 동결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힐링경제=윤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