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연합뉴스]

한국은행이 스테이블코인의 다양한 위험 요인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며, 은행이 주도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방안을 재차 제안했다. 아울러 한은이 개발 중인 예금토큰과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함께 활용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한은은 27일 '스테이블코인의 주요 이슈와 대응 방안' 보고서를 공개하고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한국 경제의 새 가능성을 여는 열쇠일 수 있지만, 동시에 또 다른 불안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며 "혁신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신뢰가 중요한 만큼 제도적 안전판이 긴요하다"고 밝혔다. 141페이지 분량의 이번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 관련 정보와 연구, 논란을 종합한 일종의 '한은판 스테이블코인 백서'에 해당한다.

한은이 제시한 스테이블코인의 주요 위험 요소는 일곱 가지로 정리된다.

먼저 디페깅 위험이 있다. 디페깅은 스테이블코인의 가치가 연동된 자산의 가치와 괴리되는 현상을 말한다. 2023년 초 USDC의 경우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의 영향으로 가치가 한때 0.88달러까지 하락했다. 당시 써클이 SVB에 예치한 자금은 전체 준비자산의 8%에 불과했지만, 준비자산의 신뢰도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시가총액의 18%에 달하는 78억 달러의 상환 요구가 집중됐다.

금융안정 위협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됐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1코인=1원' 약속은 발행사와 이용자 간 사적 계약일 뿐, 국가나 중앙은행이 이를 법적으로 보증하지 않는다"며 "발행사가 상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 스테이블코인 보유자는 예금자와 달리 예금자보호법에 따른 보호도 받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금산분리 원칙 위배 가능성도 제기됐다.

IT 기업이나 비은행 기업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것은 이들에게 화폐 발행과 지급결제, 즉 대출을 제외한 은행업무를 허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이는 산업자본이 은행업을 직접 영위하지 못하게 막은 금산분리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 한은의 설명이다.

외환 및 자본 규제 우회 위험도 우려 사항으로 꼽혔다.

국내 투자자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익명 거래가 가능한 개인 지갑으로 옮긴 뒤 달러 스테이블코인 등 다른 자산으로 교환해 해외로 이전해도 현재로서는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는다.

통화정책 효과 약화 가능성도 제시됐다.

한은은 현재 지급준비제도, 공개시장운영, 은행 앞 유동성 대출제도 등을 통해 통화량을 조절하고 있지만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통제 수단은 없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은행 예금 내 스테이블코인 발행자의 도매 예금 비중을 10%로 가정할 경우,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100조원 발행되면 통화량은 93조3천억원 증가할 것으로 추정됐다.

단기 금리 변동성 확대 우려도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준비자산으로 국채 등을 매입하면 단기 금리에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적 신뢰성 문제도 지적됐다.

한은은 "업계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면 높은 수준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신기술이 신뢰를 담보할 수 있을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최근 내부 시스템 오류로 준비자산 없이 300조달러 규모의 PYUSD 스테이블코인이 잘못 발행된 사고를 실례로 제시했다.

한은은 이러한 위험 요인에 대한 해법으로 은행 중심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체계를 제안했다. 은행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의 주체가 되거나 은행권 주도 컨소시엄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면 문제의 상당 부분이 현행 규제 체계에서 관리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은은 "IT 기업 등 비은행 기업도 은행 중심 컨소시엄에 참여해 혁신과 성장을 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예금토큰과의 병행 사용 방안도 제시됐다.

예금토큰은 은행 예금을 토큰 형태의 디지털 자산으로 변환한 것으로, 한은이 운영하는 블록체인 플랫폼에서 은행이 발행하고 관리한다. 금융소비자들은 이 예금토큰을 물품이나 서비스 구매 등에 사용할 수 있다.

한은은 "은행이 주도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등장하고 예금토큰과 상호 보완적으로 설계된다면 민간의 혁신과 공공의 신뢰가 조화되는 이중 구조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울러 "미국 자유은행 시대의 은행권, 조선 후기 당백전처럼 신뢰를 얻지 못한 화폐는 언제나 같은 결말을 맞았다"며 "혁신에만 집착해 반드시 갖춰야 할 안전장치를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힐링경제=윤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