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18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유럽 지도자들이 회동하는 모습. [자료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대러시아 행보에서 엇박자를 내던 미국과 유럽이 동시다발로 제재 카드를 꺼내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압박에 나섰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현지시간) 이번 조치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미국과 유럽이 대러시아 압박에서 보조를 맞춘 행보라고 보도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22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평화 협상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는다며 러시아 대형 석유기업 로스네프트, 루코일과 그 자회사들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러시아 전체 산유량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두 기업을 겨냥한 이번 조치로 러시아 4대 석유기업이 모두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됐다.
같은 날 유럽연합(EU)도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금지 조치 등을 포함한 19차 대러시아 제재 패키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러시아산 원유 밀수에 활용되는 '그림자 선단' 소속 유조선 117척도 제재 명단에 추가하기로 했다. 이로써 제재 대상 유조선은 누적 558대로 늘어났다.
앞서 EU는 지난 7월 합의한 18차 대러시아 제재안에서 인도에 있는 로스네프트의 최대 정유소를 제재한 바 있다.
EU 비회원국인 영국도 가세했다. 영국은 지난 15일 미국이 제재를 가한 로스네스트, 루코일과 '그림자 선단' 소속 유조선 44척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영국 정부는 제재를 발표하면서 "이들의 활동은 러시아에 경제적으로 중요하며, 국가 재정에 기여해 우크라이나 전쟁 지속에 일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석유 수출 감소는 크렘린궁의 전쟁 자금에 직접 타격을 준다. 에너지 판매 수입이 러시아 정부 예산의 최대 3분의 1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WSJ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 미국과 EU 관리들은 러시아 경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압박하는 방안을 놓고 긴밀히 협의해왔다.
미 재무부가 제재안을 발표한 지난 22일에도 EU 대표단이 워싱턴DC에 체류 중이었다.
유럽이 제재 집행력 측면에서 더욱 영향력이 큰 미국과 힘을 합치면 제재의 압박 강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양측이 러시아 주요 석유 기업과 거래하는 기업과 은행을 공동 제재하고, '그림자 선단' 활동 차단에 협력하면 제재 효과는 더욱 강력해진다고 WSJ은 설명했다.
이미 3년 넘게 서방 제재를 견뎌온 러시아 경제는 최근 노동력 부족, 고금리, 전시 재정 긴축 등이 겹쳐 정체 상태에 빠진 것으로 평가된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크렘린궁에서 기자들에게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에 대해 "특정한 결과를 내겠지만 우리의 경제적 안녕에 큰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신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라며 "그가 그렇게 느낀다니 기쁘다. 좋은 일이다. 6개월 뒤에 결과를 알려주겠다"며 특유의 조롱하는 화법으로 신경전을 이어갔다.
제재 발표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논의하기 위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기로 한 푸틴 대통령과의 회동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미국-러시아 정상회담 가능성은 유럽을 불안하게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개월간 러시아에 제재를 위협하고 우크라이나의 추가 무기 지원 요청에도 호의를 보였으나, 이제 푸틴 대통령에게 우호적으로 돌아서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불거졌다.
그러나 이번 제재와 정상회담 취소를 계기로 미국이 러시아에 더욱 강경해지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의 '밀당' 관계가 끝났다는 평가도 나온다.
CNN은 이날 분석 기사에서 "제재보다 더 큰 문제는 크렘린궁이 평화 협상과 막대한 경제적 거래 가능성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군사 공세를 밀어붙이며 오랫동안 즐겨 써온 '트럼프 조종' 전술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힐링경제=김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