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관 장관, 미국 상무부 장관 [자료사진=연합뉴스]

한미 무역협상이 두 달 넘게 교착 상태를 보이는 가운데, 한국 정부의 장관급 고위 관계자들이 16일(현지시간) 동시에 미국을 방문해 막판 협상에 나섰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오후 워싱턴DC 상무부 청사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회동했다. 이 자리에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도 동석했다.

이날 오후 6시 40분께 상무부 청사에 도착한 김 장관은 기자들의 질문에 "잘 하겠다"고 짧게 답했다.

이번 협상의 핵심 쟁점은 3천500억 달러(약 500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 구체화다. 양국은 투자 패키지의 구성 방안을 놓고 이견을 보이며 두 달 넘게 협상 교착 상태를 이어왔다.

김 장관과 러트닉 장관은 양국 무역협상의 대표자로, 지난 4일 뉴욕에서 만난 지 2주도 안 돼 다시 마주했다.

이날 김 장관과 함께 미국에 도착한 김용범 실장은 입국 직후 취재진에게 "지금까지와 비교해볼 때 양국이 가장 진지하고 건설적 분위기에서 협상하고 있는 시기"라며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협상이 잘 마무리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과 김 실장은 이날 입국 직후 첫 일정으로 백악관 업무 시설인 아이젠하워 행정동을 찾았다. 이들은 러셀 보트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국장과 50여 분간 면담하며 양국 간 조선업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여 본부장도 이 자리에 동행했다.

김 장관은 면담 후 연합뉴스와 만나 "'마스가'에 대해 여러 가지 건설적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는 한미 조선 협력 사업을 뜻하는 용어다. 지난 7월 한국과 미국이 큰 틀에서의 무역협상을 타결지을 때 한국이 미국에 제안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 '조선'(Shipbuilding)이라는 단어를 조합한 것이다.

한국은 조선 사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조선업이 쇠퇴한 미국은 중국과의 글로벌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조선업 부흥을 추진하고 있다.

마스가는 이러한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협상 타결에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장관은 최근 중국이 마스가의 대표적 업체인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 5곳을 겨냥한 제재를 발표한 것도 논의했는지 묻자 "그런 이야기까지는 아니고,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젝트를 할지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답했다.

김용범 실장은 OMB 방문 직전 취재진과 만나 "OMB가 조선업 프로젝트에 굉장히 중요한 부처"라며 "OMB의 얘기를 좀 듣고, 우리나라와 미국의 조선산업 협력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서로 인식을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OMB 방문을 통해 가시적인 결과물이 도출될 수 있을지 묻자 "OMB는 직접적으로 협상을 하는 부처는 아니다"라며 "중요한 프로젝트 중에 하나에 대한 본인들의 입장을 저희가 청취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전날 미국에 도착해 측면에서 협상을 지원하고 있다. 구 부총리부터 김 실장, 김 장관, 여 본부장까지 각료급 인사 4명이 협상 진전을 위해 한꺼번에 미국을 찾은 것이다.

구 부총리는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 및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차 방미했지만,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을 만나 한미 무역협상 관련 소통을 이어갔다.

구 부총리는 베선트 장관과 전날 만나 대미 투자 선불 요구가 한국 외환시장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다.

구 부총리는 이날 워싱턴DC의 IMF 본부에서 특파원단과 만나 "실무 장관은 3천500억 달러 전액 선불 투자가 어렵다는 한국 정부 입장을 이해하고 있는데, 얼마나 대통령을 설득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느냐 하는 부분은 진짜 불확실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 협상을 통해 양국 간 협상 교착 상태가 해소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특히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할 예정인 만큼, 이를 계기로 한미 무역협정이 최종 타결될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모인다.

[힐링경제=김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