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영녕전 신실 입구 [자료사진=연합뉴스]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에서 외부인들과 차담회를 가진 당시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영녕전의 신실까지 둘러본 것으로 확인됐다.

평소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는 의례 공간이 열렸다는 점에서 국가유산의 사적 이용 논란이 확대될 전망이다.

2일 국가유산청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김 여사는 지난해 9월 3일 종묘 망묘루에서 차담회를 열기 전 영녕전을 방문했다.

당시 김 여사는 외국인 2명과 통역사 1명과 함께 있었으며, 이재필 궁능유적본부장도 동행했다. 이들은 영녕전 건물과 내부 신실 등을 둘러본 것으로 전해졌다.

김 여사 일행은 종묘가 문을 닫는 화요일에 정문인 외대문이 아닌 영녕전 부근 소방문으로 들어왔으며, 영녕전에서 약 5분간 머물렀다고 궁능유적본부는 설명했다.

궁능유적본부는 신실 개방 여부와 관련해 "김 여사가 영녕전 일대에 머무르는 동안 신실 1칸을 개방했다"고 밝혔다. 다만 "당시 참석한 사람 가운데 신실 내부로 들어간 사람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신실 문 바깥에서 내부를 관람했다고 설명했다.

김 여사와 동행한 외국인은 유명 화가 마크 로스코의 가족으로 알려졌다. 김 여사는 2015년 코바나컨텐츠 대표 시절 미국 워싱턴DC 국립미술관 소장 로스코 작품 50점을 들여와 전시를 연 바 있다.

신주를 모시는 신실은 종묘 안에서도 가장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진다. 내부에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봉안한 신주장과 의례용 상징물인 어보와 어책을 보관하는 보장과 책장이 배치되며, 그 앞은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다.

영녕전의 신실은 매년 5월 첫째 주 일요일과 11월 첫째 주 토요일에 봉행하는 대제 때만 문을 여는 것이 원칙이다.

궁능유적본부는 신실 개방 지시 주체에 대한 의원실 질의에 "대통령실 문화체육비서관실에서 영녕전 내부를 볼 수 있도록 신실 1칸을 개방할 것을 지시해 개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문화체육비서관실은 차담회 전날인 9월 2일 오전 8시부터 종묘 일대에서 사전 답사를 진행했으며, 김 여사가 영녕전을 거쳐 망묘루로 이동하도록 동선을 계획했다고 한다.

그런데 종묘 안에는 평소 보기 어려운 신실을 재현한 공간이 이미 마련돼 있다. 국가유산청은 지난해 5월 향대청을 개편해 태조 신실을 재현한 공간을 상시 공개하고 있다. 향대청은 차담회가 열린 망묘루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재현 공간이 있음에도 실제 신실을 열게 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종묘관리소는 김 여사 방문에 앞서 영녕전 신실과 주변을 청소하기도 했다.

임오경 의원은 "김건희 여사 일행을 위해 영녕전 신실을 개방하라고 요구한 것은 명백한 직권남용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관련 의혹이 국가유산 사적 이용으로 결론 나면 비용을 청구하고 담당자를 징계해야 한다"며 "국정감사에서도 진실을 파헤칠 것"이라고 밝혔다.

종묘 신실 개방을 놓고 국가유산청 내부에서도 당시 대처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관계자는 "윗선에서 장소 협조 요청이 있다고 해도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 되는 장소가 종묘"라며 "비공개 행사라 하더라도 신실 개방은 안 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궁능유적본부는 "당시 종묘 차담회가 대통령실 행사라고 판단해 영녕전 신실 1칸을 개방해 안내했다"고 해명했다.

종묘는 조선과 대한제국 시대 역대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국가 사당이다.

주요 건물 중 하나인 영녕전에는 총 16칸의 신실이 있으며, 태조의 4대 조를 포함해 역대 왕과 추존된 왕 15위, 왕후 17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힐링경제=홍성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