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용 한은 총재 [자료사진=연합뉴스]
한국은행 총재의 기자간담회 발언이 금융시장, 특히 채권시장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 학술 연구를 통해 처음으로 입증됐다. 특히 이창용 현 총재의 직설적인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이 시장의 민감한 반응을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1일 유각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조두연 성균관대 교수 등 연구팀이 한은 경제연구원 학술지 '경제분석'에 발표한 논문 내용을 공개했다.
이 연구는 2008년 8월부터 2023년 7월까지 약 15년간 한은 총재의 기준금리 결정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 내용과 그에 따른 금융시장 반응을 종합 분석한 결과다.
연구팀은 기준금리 발표 직후 40분, 기자간담회 진행 중, 기자간담회 일주일 전 등 세 가지 시점을 설정해 주식·채권·외환시장의 변동성을 비교했다.
연합뉴스의 1보 송고 시간을 기준금리 발표 시점으로 삼았고, 연합인포맥스가 제공하는 1분 단위 선물 가격 데이터를 활용해 시장 변동성을 측정했다.
분석 결과, 채권시장은 기준금리 발표 직후와 기자간담회 진행 도중 변동성이 크게 확대된 반면,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은 상대적으로 변동성 확대 폭이 제한적이었다. 이는 한은 총재의 발언이 특히 채권시장 참가자들에게 중요한 정보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기별 분석에서는 더욱 흥미로운 결과가 도출됐다. 이성태, 이주열 전 총재와 이창용 현 총재 재임 기간에는 기자간담회 도중 채권시장 변동성이 평상시보다 7배에서 15배 이상 확대됐다.
반면 김중수 전 총재 시절에는 4.2배 수준에 그쳤다. 연구팀은 이러한 차이가 금리 수준 자체보다는 한은의 경기 판단이나 향후 정책 방향에 대한 시장의 관심도 차이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연구팀은 추가로 기자간담회의 통화정책 어조를 수치화한 '프레스 컨퍼런스 인덱스(PCI)'를 개발했다.
매파적(통화긴축 선호) 발언일수록 1에, 비둘기파적(통화완화 선호) 발언일수록 -1에 가깝도록 설정한 뒤 채권금리 변동성과의 상관관계를 회귀분석으로 검증했다.
분석 결과, 김중수와 이주열 전 총재 재임 시절에는 기자간담회 어조가 채권시장에 미친 영향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았다. 이성태 전 총재 시절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변동성이 높았지만, 간담회 어조 자체의 영향력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창용 총재의 경우는 달랐다. 시장 변동성이 전임 총재들에 비해 확대됐을 뿐 아니라, 그의 기자간담회 발언 어조가 채권 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경향이 비교적 뚜렷하게 확인됐다. 연구팀은 "전임 총재들과 달리 이창용 총재의 명확하고 직설적인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이 시장의 민감한 반응을 유도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은행 총재의 기자간담회 내용이 금융시장에 미친 영향을 학술적으로 분석한 첫 사례다. 과거에도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을 분석한 연구는 있었지만, 총재의 직접 발언과 시장 반응을 체계적으로 연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의 의의에 대해 "한국은행의 역할이 단순히 기준금리 조정에 그치지 않고, 시장과의 소통을 통해 정책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이는 중앙은행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통화정책 수단으로서 갖는 중요성을 실증적으로 입증한 것으로 평가된다.
[힐링경제=윤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