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만부두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는 모습 [자료사진=연합뉴스]

한국과 미국이 지난 7월 말 타결한 관세 협상의 후속 조치를 위한 실무협의를 미국에서 진행하고 있다고 9일 확인되었다.

이번 협의에서는 한국이 약속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 구체화와 농축산물 시장 개방 등 민감한 문제들이 집중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당국에 따르면 한국 통상 실무 대표단이 최근 미국 워싱턴DC를 비공개로 방문해 미국 무역대표부(USTR), 상무부 등 당국자들과 관세 협상 후속 실무협의를 벌이고 있다.

한미 양국은 지난 7월 30일 관세 협상을 타결하고 지난달 25일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이를 큰 틀에서 확인했으나, 협상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협의를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다.

한국은 상호관세율 인하를 조건으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와 1000억 달러 상당의 미국산 에너지 구매를 약속했으며, 지난달부터 15%의 상호관세를 적용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대미 최대 수출품인 자동차에 부과되는 품목관세는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합의했음에도 미국 내 행정절차 등을 이유로 아직 실행되지 않고 있다.

실무협의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것은 한국이 약속한 대미 투자 패키지의 구체화 방안이다.

투자 패키지 구성 방식, 투자 결정 과정, 투자 이익 배분 등이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이 제안한 투자 패키지는 조선 분야에 1500억 달러, 반도체 등 전략 산업에 2000억 달러를 각각 투자하는 방식이다.

투자는 직접 투자, 대출, 보증을 통해 지원하는 개념으로 설계되었다.

한국은 직접 투자를 5% 정도로 한정하고 나머지 대부분을 투자 프로젝트를 간접 지원하는 보증으로 채워 실질적 부담을 낮추는 방안을 선호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한국이 높은 비율로 자국이 직접 지정한 분야에 지분 투자를 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 대상 선정에서도 의견차가 존재한다.

미국은 투자 대상 선정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한국은 투자 대상 프로젝트의 사업성을 검토하며 투자를 결정하고 한국 기업도 사업에 참여시키길 원하고 있다.

투자 이익 배분 문제에서도 양측 간 입장차가 크다.

미국은 투자 이익의 90%를 보유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한국은 '이익의 90%를 미국에 재투자한다'는 정도로 해석하고 있다.

앞서 무역 합의를 타결한 일본의 경우, 대미 투자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투자금이 모두 회수되기 전까지는 양국이 절반씩 나누지만, 투자금이 회수된 후에는 미국이 수익의 90%를 취하는 방식으로 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정부는 이미 대미 투자 확대에 대비해 내년 예산안에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의 자본금 확충과 추가 출자를 위한 예산 1조9천억원을 반영하는 등 구체적인 준비에 나섰다.

농산물 분야에서도 미국이 한국에 '선 행동'을 요구하며 비관세 장벽 해소를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한국은 관세 협상 타결 과정에서 미국에 '과채류 수입 위생 관련 양국 협력 강화'를 약속한 바 있다.

한국 정부는 쌀과 소고기가 이번 합의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검역 체계도 기존 틀 자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농산물 추가 개방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협력 강화'를 통해 사실상 중단 상태인 미국산 농산물의 검역 절차 진행 속도가 빨라진다면 사과, 배, 복숭아 등 미국산 과채류의 한국 수입 일정이 앞당겨져 실질적인 미국산 농산물 추가 수입 개방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특히 미국은 1993년 신청한 사과 검역이 20년 넘게 현재 8단계 중 2단계인 '수입 위험분석 절차 착수'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며, 한국이 구체적인 '시간표'를 제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무협의 테이블에서는 온라인 플랫폼법 도입, 구글과 애플이 요구한 정밀 지도 반출 허용과 같은 디지털 분야 이슈들도 함께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8일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 주재로 범부처가 참여하는 통상추진위 회의를 개최했다.

산업부를 비롯해 기획재정부, 외교부, 농림축산식품부, 국토교통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식품의약품안전처, 특허청 등이 참여한 회의에서 한미 관세 협상 실무 협의 과정의 현안에 대해 부처 간 의견을 조율했다.

여한구 본부장은 "정부는 우리 기업의 이익을 최대한 반영하되 민감한 부분에 대한 우리 입장도 종합적으로 감안해 전반적인 국익 극대화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미측과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워싱턴DC에서 진행 중인 관세 협상 후속 실무협의가 상당 수준으로 정리된다면 장관급 협의를 통해 논의 내용을 확정하는 절차를 거치게 될 전망이다.

이 경우 이르면 이달 중 여한구 본부장이나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직접 미국을 방문해 최종 협의를 마무리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통상 실무 대표단은 미국과의 협의 과정을 수시로 본국에 보고하면서 협의 내용을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힐링경제=윤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