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연합뉴스]
한국은행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추가 인하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중은행에서 새로 취급된 주택담보대출 10건 중 9건은 ‘고정금리’ 대출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준금리 인하로 시장금리는 하락하는 추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소비자들은 변동금리 대신 고정금리를 택하고 있는 셈이다.
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4월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신규 주택담보대출 중 고정금리 대출 비중은 89.5%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12월(81.3%)보다 8.2%포인트 오른 수치이며, 전체 대출 중 거의 대부분이 고정금리로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다.
고정금리 대출 비중은 불과 3년 전인 2021년 6월에는 39.5% 수준까지 낮아졌었다. 당시에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낮았고, 시장금리 역시 안정세를 보였기 때문에 대출자들은 변동금리를 선호했다. 하지만 이후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대출자들의 이자 부담이 급증했고, 이에 따라 고정금리 선호도가 높아졌다.
지난해 8월에는 고정금리 대출 비중이 무려 96.8%까지 치솟았다. 이후 같은 해 10월부터 기준금리 인하 기조가 시작되며 고정금리 선호도가 다소 줄어들었지만, 2024년 들어 다시 90% 가까이로 반등한 것이다.
우선 실제 고정금리 대출 상품의 금리가 변동금리 상품보다 낮다는 점이 꼽힌다.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4월 30일 기준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보면, 고정금리는 연 3.370∼5.516%로 나타났다. 반면 변동금리는 연 3.880∼5.532%로 고정금리보다 상단은 0.016%p, 하단은 0.510%p 더 높았다.
통상 고정금리는 장기물 국채 금리와 연동돼 미래의 금리 상승 리스크를 반영하기 때문에 변동금리보다 높은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현재는 시장이 기준금리 인하를 선반영하고 있고, 고정금리 상품이 이에 따라 선제적으로 낮아진 반면, 변동금리는 상대적으로 더디게 조정되고 있어 역전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또한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구조가 고정금리 대출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DSR 규제는 차주의 대출 상환 능력을 기준으로 대출 한도를 정하는 제도다. 여기서 ‘스트레스 금리’라는 개념이 적용되는데, 변동금리나 혼합형 대출은 향후 금리가 오를 수 있다는 가정을 반영해 가산금리를 적용한다.
현재 스트레스 금리 반영 비율은 변동형이 100%, 혼합형은 60%, 주기형은 30%다. 이에 따라 동일한 금리 조건에서도 고정금리 대출의 DSR 수치가 더 낮게 산출되어, 대출 한도는 더 많이 나오는 구조다.
오는 7월에는 3단계 스트레스 DSR이 시행되면서 혼합형·주기형 대출의 반영 비율이 각각 80%·40%로 높아질 예정이지만, 여전히 고정금리 대출의 한도가 더 우위에 있을 전망이다.
게다가 금융당국의 정책 기조도 고정금리 확대를 지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은행권에 고정금리 대출 확대를 유도하는 행정지도를 시행해왔으며, 지난해에는 고정금리 주담대 비중을 30% 이상 유지하라는 목표치를 제시하기도 했다.
한편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하반기에도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9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성장세가 예상보다 크게 약화했다”며 “추가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시장 일각에서는 연내 기준금리 인하가 2차례 더 단행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처럼 기준금리 인하 기조가 이어지면서 대출금리는 점차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전문가들은 지금 대출을 계획하고 있다면 현재의 유리한 고정금리를 우선 활용하는 전략이 현명하다고 조언한다.
김혜미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우선 금리가 낮은 고정형으로 대출받고, 추후 변동금리 대출 금리가 더 낮아지면 갈아타는 전략을 고려해볼 수 있다”며 “중도상환수수료가 과거에 비해 많이 낮아진 점도 고려하면 리스크는 과거보다 줄어든 상황”이라고 조언했다.
결국 기준금리는 내려가고 있지만, 시장 참여자들의 선택은 안정성과 대출 여력 확대를 중시한 결과로 해석된다. 고정금리 대출의 인기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힐링경제=윤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