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사봉 두드리는 이창용 한은 총재 [자료사진=연합뉴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가 대선을 닷새 앞두고 전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5월 29일 열린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기존 연 2.75%에서 연 2.50%로 0.25%포인트 낮추기로 결정했다. 이는 작년 10월 이후 7개월 만에 네 번째 인하 조치다.
이번 금리 인하는 최근 한국 경제의 급속한 둔화에 대응한 것으로 풀이된다. 민간 소비와 건설투자 등 내수는 이미 위축된 상황에서, 미국발 관세 전쟁 등의 여파로 수출마저 불안정한 국면에 접어들자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소비와 투자의 불씨를 다시 살리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실제로 지난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 대비 –0.2%의 역성장을 기록하며, 경기 하방 압력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우려를 키웠다. 이에 대해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생각보다 더 좋지 않은 경기 상황이 지표로 나타나면서, 여러 기관이 성장률 전망을 잇따라 하향 조정하고 있다”며 “한은도 결국 금리를 내릴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 연구기관들의 올해 성장률 전망도 속속 낮아지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달 들어 전망치를 1.7%에서 0.7%로 무려 1.0%포인트 하향했고,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역시 1.6%에서 0.8%로 전망치를 반토막 냈다. 8개 주요 해외 투자은행(IB)들의 평균 전망치도 0.8%에 불과하다.
한국은행은 이날 공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을 기존 1.5%에서 0.8%로 하향 조정했다. 이는 불과 석 달 만에 0.7%포인트가 낮아진 수치로,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의 심각성을 반영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한국은행은 작년 10월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으로, 11월엔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두 달 연속 금리를 낮추며 통화 완화 기조로 전환했다. 이후 1월에는 동결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가, 2월 다시 인하를 단행하는 등 최근까지 통화정책에 있어 적극적인 대응을 이어왔다.
그러나 금리 인하의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되는 만큼, 그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특히 기준금리 인하가 주택 시장 과열과 가계부채 증가를 촉진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낮아진 금리와 함께 새 정부 출범에 따른 부동산 기대 심리가 겹칠 경우, 하반기 부동산 시장과 가계부채가 다시 불안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22일 기준 746조4,917억원으로, 4월 말 대비 한 달 새 3조4,000억원 이상 증가했다. 이는 전달보다 증가 속도가 더 빠른 수치다. 같은 기간 한국은행이 발표한 가계신용 통계에서도 1분기 말 기준 잔액이 1,928조7,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외환시장도 주목할 대목이다. 미국(4.25~4.50%)과 한국(2.50%) 간 기준금리 차이는 2.00%포인트로 벌어졌다. 이러한 금리 격차는 외국인 자금 유출을 유발하고 원화 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일각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다시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높다.
다만 최근 들어 환율은 다소 안정세를 보였다. 지난달 9일, 미국의 상호관세 발효 직후 1,487.6원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은 이후 달러 약세와 글로벌 불확실성 완화로 인해 26일에는 1,360.4원까지 하락하며 7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금리 인하의 부담 요인이 일정 부분 사라졌다는 점에서 통화당국의 결정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통화정책만으로는 경기 회복을 이끌기엔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조영무 연구위원은 “금리 인하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며 “현재 금융기관의 대출 태도가 여전히 완화적이지 않고, 금리만 낮춘다고 해서 가계나 기업의 자금 수요가 살아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는 통화정책보다는 추경 등 재정정책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과 시장은 한국은행이 하반기에도 한두 차례 추가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그만큼 저성장 국면 탈출을 위한 보다 강력한 정책 대응이 절실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금리 인하가 가져올 긍정적 효과와 부작용 간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는, 향후 한국 경제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힐링경제=윤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