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정책이 대통령 권한을 넘어서는 위법한 조치라는 미국 연방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해온 일방적 관세 정책에 제동을 거는 중요한 사법부 개입으로 평가된다.
미국 연방국제통상법원 재판부는 28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2일 '해방의 날'에 발표한 상호관세의 발효를 차단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경제정책 중 하나였던 상호관세 정책이 사법부에 의해 직접적으로 제재받은 첫 번째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미국 헌법이 대통령이 아닌 의회에 과세 권한을 부여했으며, 이는 미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한 대통령의 비상권한으로도 뒤엎을 수 없는 기본 원칙이라고 명시했다. 이는 삼권분립 원칙에 따른 권력 간 견제와 균형이라는 미국 헌정 체제의 기본 틀을 재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판결의 배경에는 미국 소재 5개 기업이 제기한 집단 소송이 있었다. 이들 기업은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결정 권한을 가진 연방의회를 거치지 않고 위법하게 관세 정책을 펼쳤다며 지난달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 기업들의 이러한 법적 도전은 단순히 경제적 이익을 위한 것을 넘어서 헌법적 원칙의 수호라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평가된다.
원고 기업들은 소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권한 없이 관세를 부과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IEEPA가 대통령에게 부여한 권한이 관세 부과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며, 트럼프 행정부가 법률의 취지를 왜곡해서 해석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국제비상경제권한법을 관세 부과 근거로 활용한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의 법적 관례와 해석을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대통령 권한을 확대 해석했음을 보여준다. 부과 직후부터 적법성 논란이 지속되어온 것도 이러한 선례 없는 권한 행사 때문이었다.
원고들을 대리한 비영리단체 리버티 저스티스센터는 미국 헌법이 대통령이 아닌 의회에 과세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는 기본 원칙을 지적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강력히 비판했다. 이 단체는 헌법 조항의 명확한 해석을 통해 대통령의 관세 부과 권한이 존재하지 않음을 논리적으로 제시했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의 법무부는 IEEPA가 대통령에게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명확히 부여했다고 주장하며 정면으로 맞섰다. 법무부 측 변호인단은 앞서 법원에 제출한 문서에서 "IEEPA는 의회가 대통령에게 특정 상황에서 관세 부과를 통해 수입을 규제할 권한을 합법적으로 위임했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양측의 상반된 법리 해석은 미국 헌법과 관련 법률의 해석을 둘러싼 근본적인 견해 차이를 드러낸 것이다. 법무부의 주장은 대통령의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광범위한 권한을 강조하는 반면, 원고 측은 의회 중심의 민주적 통제 원칙을 강조하는 입장을 취했다.
이번 기업들의 소송과는 별도로 뉴욕주를 포함해 총 12개 주정부도 지난달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중단을 요구하는 소송을 같은 법원에 제기한 상태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연방 차원뿐만 아니라 주정부 차원에서도 광범위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주목할 점은 소송 원고에 네바다, 버몬트 등 주지사가 공화당 소속인 주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대한 반대가 당파적 경계를 넘어서고 있음을 시사한다.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마저 연방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소송에 참여한 것은 이번 관세 정책의 파급효과가 얼마나 광범위하고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12개 주의 집단 소송에 앞서 캘리포니아주의 개빈 뉴섬 주지사는 지난달 캘리포니아 북부연방법원에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을 중단해달라며 단독으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뉴섬 주지사의 이러한 선제적 대응은 다른 주정부들의 연쇄 소송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캘리포니아주는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관세 정책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이다. 뉴섬 주지사의 소송 제기는 단순히 주정부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을 넘어서 연방정부의 정책이 각 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연방법원의 판결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중대한 변곡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법부가 행정부의 핵심 정책에 제동을 건 것은 삼권분립 체제 하에서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판결에 대해 상급심 상고를 검토할 것으로 보이며, 이는 관세 정책을 둘러싼 법적 공방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또한 이번 판결이 트럼프 행정부의 다른 경제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향후 정책 추진 과정에서 더욱 신중한 접근이 요구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은 대통령의 권한과 의회의 권한 사이의 경계선을 명확히 하는 중요한 선례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 헌법 체제 하에서 과세 권한이 의회에 있다는 기본 원칙이 재확인된 만큼, 향후 유사한 정책 추진 시에는 보다 엄격한 법적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힐링경제=김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