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연합뉴스]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해 빚을 내기 시작한 청년들이 결국 개인회생에 이르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채무를 갚기 위해 또다른 부채를 지는 '돌려막기'가 반복되며, 재정적 파산뿐만 아니라 정서적 고립과 극단적 선택 충동까지 경험한 청년들의 고통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복지재단 산하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는 28일, 지난해 개인회생을 신청한 만 29세 이하 청년 중 '청년재무길잡이' 프로그램을 이수한 1,374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청년층의 부채 원인과 회생 과정에서 겪는 심리·사회적 어려움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조사에 따르면, 이들이 처음 빚을 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생활비 마련'(70%)이었다.
단순 생계를 위해 시작된 부채가 돌이킬 수 없는 채무로 불어나며, 일상적인 소비나 주거비, 가족 지원 등도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주거비는 29%, 과소비는 27%, 가족 지원은 17%, 사기 피해는 15%로 뒤를 이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응답자의 84%가 ‘부채 돌려막기’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다른 빚을 갚기 위해 새 빚을 지는 악순환은 상환 능력을 빠르게 마비시켰고, 결국 개인회생에 이르는 경로가 되었다.
이들이 짊어진 채무 규모도 적지 않았다. 4천만 원에서 6천만 원 미만의 채무가 31%로 가장 많았고, 6천만∼8천만 원 미만(22%), 4천만 원 미만(19%), 1억 원 이상(15%)도 적지 않았다. 이미 한계 상황에 이른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부채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난 이유로는 '다른 빚을 갚기 위한 대출'(65%)이 가장 많았고, '높은 이자 부담'(38%), '실직·이직 등으로 인한 소득 공백'(31%)이 그 뒤를 이었다. 대부분의 청년이 고정 수입이 불안정하거나 부재한 상황에서 고금리 대출에 의존했고, 이는 돌려막기 구조를 심화시켰다.
채무 문제가 단지 경제적인 부담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도 이번 조사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개인회생을 신청한 청년의 93%가 지난 1년간 정서적 어려움을 겪었고, 그 중 34%는 자살 충동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이는 단순한 재무적 위기가 아니라 생명과 직결되는 위기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청년 10명 중 6명(63%)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이나 기관이 없다’고 답했다는 점이다. 가족과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한 청년들은 고립된 채 문제를 감당하고 있으며, 구조 요청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서울시는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내에 '청년동행센터'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청년동행센터는 39세 이하 청년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으며, 부채 상담, 재무교육, 심리 상담 등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정은정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장은 “개인회생을 신청한 청년들은 대부분 사회적 안전망이 미비하고, 혼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구조 속에 놓여 있다”며 “서울시는 이들이 다시 삶의 주도권을 회복하고 건강한 재무 습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단순히 청년 부채 실태를 넘어, 한국 사회의 청년층이 처한 구조적 취약성과 지원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낸다.
생활비 한 줄에서 시작된 빚이 어떻게 인생 전체를 위협하는 위기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경고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금융 조언이 아닌, 그들의 삶 전체를 포용하는 종합적이고 지속적인 사회적 안전망이다.
[힐링경제=윤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