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의 비공개 알리는 김예영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 [자료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을 둘러싼 사법부 내부의 논란이 전국법관대표회의 소집으로 이어졌지만, 결론은 미뤄졌다.
26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는 논의 끝에 입장 채택 없이 대선 이후로 결정을 유보하며, 사법부 내부의 입장 정리가 쉽지 않음을 보여줬다.
이날 오전 10시, 경기 고양시에 위치한 사법연수원에서는 전국법관대표회의 임시회의가 열렸다. 법관대표 126명 중 88명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참석했으며, 회의는 약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회의를 마친 후 법관대표회의 관계자는 “오늘 회의는 종료됐고, 향후 속행 회의에서 상정된 안건에 대해 보충 토론과 의결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다음 회의 일정은 미정이며, 대선이 끝난 6월 3일 이후 원격회의로 이어질 예정이다.
이번 회의는 최근 이재명 후보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판결 이후 불거진 사법부 독립성과 신뢰 문제에 대한 우려가 배경이 됐다. 특히 재판의 공정성, 외부 압력의 가능성,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 등에 대한 내부 법관들의 문제의식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전국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커졌다.
회의 안건은 김예영 의장(서울남부지방법원 부장판사)이 상정한 2건이 중심이었으며, 이는 사법부가 공정한 재판과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과 그에 따른 공개 입장 발표 여부를 주제로 하고 있었다. 현장에서는 법관들에 의해 추가적인 안건이 제안되어 총 5건으로 늘어났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법관들은 심도 있는 논의를 이어갔으나, 사법부 명의로 공식 입장을 표명하는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해, 입장 표명을 당장 결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데 의견이 모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가오는 대선이라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국면에서 법관회의의 입장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2017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이후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회의체로, 전국 각급 법원에서 선출된 대표 판사들이 사법부 독립성과 행정 운영에 관한 의견을 모아내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외부로부터의 압력에 대응하거나 사법제도 개혁 방향에 대한 내부 의견을 공론화하는 데 기능하지만, 사법부 전체를 대표하는 공식 의사결정기구는 아니다.
이번 회의가 주목받은 것은 단순히 한 후보에 대한 판결을 둘러싼 논쟁을 넘어, 재판의 독립성과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법관들의 자성적 논의라는 점 때문이다. 특히 대법원의 결정 이후 정치권과 언론에서 제기된 사법부 불신과 정치화 우려는 현직 법관들에게도 중대한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 법관은 회의 이후 “공정성과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내부 토론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지금은 외부로 메시지를 내기보다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하며 신중론에 무게를 실었다.
결국 이번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입장을 채택하지 않은 채 종료됐지만, 이는 침묵이나 회피가 아닌, 보다 깊이 있는 논의와 공감대 형성을 위한 시간 확보로 풀이된다. 대선 이후로 미뤄진 속행 회의에서는 실제 입장 표명 여부와 그 수위에 대한 판단이 이뤄질 전망이다.
사법부의 신뢰와 독립성이 도마에 오른 가운데,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어떤 결론에 도달할지는 향후 사법부의 정체성과 위상에 중대한 의미를 던지게 될 것이다. 지금은 사법부가 사회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내부의 진지한 성찰과 대응에 달려 있다.
[힐링경제=하현수 기자]